
1997년 이 세상에서 한 번도 선보인 적이 없는 유형의 건축물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등장했다. 바로 스페인 빌바오시에 신축된 구겐하임 미술관이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의 유럽판이었다.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프랭크 게리. 1980년대 전후 해체주의 건축으로 유명했던 건축가였다.
그가 선보인 미술관 건물은 도저히 건물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땅으로부터 우뚝 솟아 있어야 할 건물은 땅을 타고 길게 휘어져 흐르고 있었고, 벽과 천정이 있어야 할 곳에는 그런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커다란 휘어진 덩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음대로 생긴 이 덩어리 위에는 번쩍거리는 티타늄판들이 덮여 있어서 흡사 우주에서 떨어진 미확인 비행체나 에일리언처럼 보였다.
미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기 이전에 건물 자체가 하나의 조각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미술관이라는 이름은 건축의 한계를 넘어서서 마음대로 생겨버린 이 건물의 모양에 덧붙여진 변명처럼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 건물이 들어서면서부터는 세계 곳곳에서 수 많은 여행객들이 이 건물에 들어있는 작품이 아니라 이 건물을 보기 위해서 이곳 빌바오를 방문했고, 지금도 성황을 누리고 있다. 덕분에 이 건물이 들어선 빌바오시는 지금 엄청난 부가가치를 얻고 있다고 한다.
원래 빌바오는 스페인의 북부에 있는 조그마한 도시이다. 철광산이 있는 관계로 산업혁명 이후 제철소와 조선소 같은 중공업이 발전하여 도시가 활황을 누렸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와 철광산업의 퇴행으로 거의 몰락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이때 빌바오 정부는 철강산업 대신에 문화산업에 도시의 사활을 걸고 거금 1억 달러를 들여, 마침 유럽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만들려고 했던 미국의 구겐하임 재단과 협조하여 미술관을 비롯한 공연장을 적극 유치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건축물 하나로 도시의 운명이 좌우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빌바오 도시로서는 대단한 승부수였다.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대박이었다. 이 미술관 건물 하나로 스산하게 소멸해가던 빌바오시는 단박에 유럽 문화의 핵심지로 떠올랐고, 투자를 훨씬 상회하는 수입으로 인해 시민들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아주 윤택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특이한 건물 하나가 도시 하나를 먹여 살릴 수도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경제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알리게 된다. 그 여파로 세계의 많은 도시들은 뛰어난 건축물로 도시의 이미지 쇄신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많은 성과를 얻고자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세계적으로 건축가들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게 된다.
프랭크 게리의 이 건축물을 시발점으로 해서 지금까지 건축은 단지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사회 경제적인 요소, 도시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대상으로 깊게 각인이 된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기념비적 건축의 붐이 일어나게 되어 건축가가 거의 문화의 리더, 건축의 붐을 일으키는 새로운 주인공이 되었다. 생긴 것은 좀 기괴하지만 이 건물이 사회 문화적, 건축 역사적으로 끼친 상징적인 의미는 기괴하지 않았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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