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가로수길은 이름 그대로 가로수가 아름다운 사계의 풍경을 만드는 걸을 만한 길이었고 한 잔의 커피와 감성에 취할만한 거리였다. 하지만 최근 가로수길이 성형(?)을 시작했다. 그 성형의 속도가 너무 빨라 흡사 대한민국의 함축 고도 성장을 보는 듯 하다. 가끔이지만 갈 때 마다 공사 중이고, 새로운 건물과 가게가 생겨난다. 덕분에 지도는 무용지물이고, 한 때 잘나갔던 유니크한 매장이나 브랜드들은 세로수길로 빠져버렸거나 아예 다른 곳으로 둥지를 옮겼다.
과거가 효율을 중시하는 직선의 시대였다면 현재는 느림을 예찬하는 곡선의 시대다. 시대 정신은 건물 중심의 거리를 사람 중심의 거리로 변화시키고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주인도 빌딩이 아닌 인간이었다. 가로수길은 빌딩에 공간을 내어주는 대신 사람이 걸을수 있는 길을 내주었다. 당장의 불편함보다 걸으면서 느끼는 느림의 여유가 더 값지다는 것을 안 신사동 가로수길 사람들 덕분이었다.
건물도, 자동차도, 산업도 신사동 가로수길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가로수길의 주인은 그 ‘느림의 미학’을 찬미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느린 발 걸음, 차 한잔의 여유로 대표되는 가로수길 느림의 철학은 압구정동과 신사동에서 빠르게 달려오던 자동차들의 속도도 낮추게 하는 도심 속 작은 쉼터였다. 하지만 빠름을 중시하는 자동차와 느림을 중시하는 가로수길의 배틀에서 빠름이 승리하는듯 해 안타깝고 속상하다.
흔히 뉴욕 패션을 말할 때 소호와 노호 거리를 말한다. 쇼핑몰이 점령한 소호는 주말 오후만 되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사람들로 가득 찬 소호 거리는 패션 거리가 아닌 쇼핑 거리로 바뀐지 오래다. 서로 어깨가 부딪히는 거리에서, 물건보다 구경꾼이 더 많아 보이는 성냥갑 쇼핑몰에서 시달리다 보면 이내 지쳐버린다. 도시인의 러시아워 스트레스는 쇼핑 순간에도 계속되는 셈이다.
반면 노호는 소호에 비하면 아기자기한 숍이 많아 화려하지는 않지만 NYU의 도심 캠퍼스가 이리 저리 펼쳐져 있고, 붉은 벽돌의 오래된 건물들이 인상적인 차분한 거리다. 소박하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노호는 1950년대 부터 예술가, 학생, 히피들이 떼로 몰려 살던 곳으로 소호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이 몰려들면서 새로운 패션거리로 다시 태어났다. 한 때 소호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높고 넓은 빈 공간을 저렴하게 임대해 들어오면서 뉴욕에서 가장 활기찬 문화 거리로 각광을 받았다.
현재 진행형 가로수길은 국내 대기업과 외국계 SPA 기업과의 저가 고래 싸움에 편집 매장이 새우등 터지는 형국이다. 혹자는 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마케팅 전략이라고 말하지만 전세계 어느 도시를 가든 「자라」나 「H&M」 같은 SPA 브랜드는 넘쳐난다. 굳이 저가 브랜드를 사기 위해 관광객들이 가로수길로 몰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로수길은 자연발생적 패션 거리였다. 가로수길은 ‘사’자 들어가는 사람들보다 ‘가’자가 들어가는 사람들이 만든 공간이었다.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타이틀 보다 자신의 일을 즐기는 예술가, 사진가, 수집가 등의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즉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못이기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인생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모인 것이다.
파티 스타일스트, 패션 디자이너, 앤티크 수집가, 소믈리에, 영화감독, 장난감 수집가, 광고쟁이, 카피라이터, 사진가 등 그 동안 대한민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즐기는 직업들이 가로수길을 통해 탄생했고, 그 1인 기업인의 가로수길만의 특유한 문화를 만들었다. 가로수길은 주인장과 손님들이 만나서 이루어낸 고객 맞춤시대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요즘 SNS 시대의 아날로그 버전이 셈이다. 하지만 그 소통의 문화가 다시 개발주의적이고 도시 환경을 무시한 난개발의 형태로 가로수길을 망치고 있다.
이제 가로수길이 애초 표방했던 차 한잔의 여유와 느리게 걷기는 과거 유산이 될 위험에 직면해 있다. 입구부터 하늘 높이 올라간 빌딩이 점령하는 가로수길은 어느새 패션 성냥갑이 난무하고 있다. 1인 기업이 대기업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가로수길 특유의 느림의 미학을 즐겼던 소비자들의 권리는 과연 누가 찾아 줄것인가. 종로 피맛골의 추억이 신사동 가로수길에서도 재현되고있다.
유재부 패션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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