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100년 동안 나올 수 있는 룩은 모두 나온 지금, 패션 디자인에서 오리지날리티를 찾기란 쉽지 않다. 물론 아이디어 부재에 대한 궁색한 변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서 영감을 받고 클래식에서 모티프를 받은 매력적인 룩은 ‘신상’ 혹은 ‘명품’이라는 모습으로 매 시즌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유명 디자이너도 카피 논쟁이 휩싸이기도 한다.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스 궤스키에르가 무명 디자이너 케이식 윙의 작품을 카피해 지탄을 받은 적이 있고 존 갈리아노는 광고를 카피했다고 해서, 샤넬은 보석 디자이너의 제품을 카피해 각각 구설수에 올랐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패션 블로그와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SNS로 인해 트렌드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사이버 패션 폴리스에 의한 ‘카피’ 논쟁도 급속하게 번지고 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샤넬’도 최근 무단 카피를 했다가 창피를 당했다. 바로 스물다섯살짜리 법대생 블로거 줄리 제르보가 그 주인공이다. ‘패션 로’라는 블로그를 운영한 지 8개월밖에 안된 그녀가 샤넬의 카피 행위에 ‘한방’ 먹인 것이다.
지난달 블로거 팬들에게서 “샤넬이 최근 2012 가을/겨울 패션쇼 무대에서 선보인 팔찌가 눈에 익다”는 제보가 들어 왔다. 그녀는 인터넷으로 쇼 이미지를 찬찬히 뜯어봤고 결국 미국의 무명 보석 디자이너 ‘파멜라 러브’의 팔찌가 ‘샤넬’의 신상 팔찌로 둔갑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블로그에 ‘샤넬의 크리스털 팔찌, 어디서 많이 본 듯!’이라는 제목으로 2012년 쇼에 등장한 샤넬 팔찌가 파멜라 러브가 2011년 가을 컬렉션에서 선보인 팔찌와 쌍둥이라는 글을 증거 사진과 함께 올렸다. 결국 샤넬은 성명서를 통해 “우리 쇼에 선보인 팔찌 일부가 다른 디자이너의 팔찌와 유사하게 보인다는 점이 우리의 주목을 끌었다”며 이에 따른 후속 조치로 2012 가을 겨울 쇼에 선보인 이 팔찌들을 팔지 않기로 결정했다.
얼마 전에는 패션 블로그 ‘스타일 버블’의 운영자 수자나 라우가 영국의 대표적인 SPA 브랜드 ‘탑샵’이 젊은 영국 디자이너 야스민 키안파를 흉내냈다고 트위터에서 맹비난한 후 탑샵은 카안파의 것과 유사한 원피스를 판매 중단했다.
프랑스 명품 이브 생로랑은 2011년 리조트 컬렉션에 빨간색 밑창을 사용했다며 제화 브랜드 크리스찬 루부탱이 낸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참고로 크리스찬 루부탱의 빨간색 밑창은 브랜드의 ‘상징’이자 상표 등록이 되어 있다.
패션계 카피 논쟁은 매 시즌 끊이지 않는 화두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스타일만 비슷할 뿐 전체적인 스토리는 전혀 다른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이든 찜찜한 기분만은 피할 수 없다. 백화점이나 동대문 시장에 가서 보면 파리와 이탈리아, 뉴욕 등지의 패션쇼에서 봤던 제품들이 디테일만 약간 바꾼 채 그대로 판매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국내 패션 브랜드 디자인팀이 해외 하이 앤드 브랜드의 컬렉션을 관람한 후, 전시장에서 사진을 찍은 뒤 그 사진을 바탕으로 다음 시즌 신상품을 출시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몇몇 해외 럭셔리 브랜드에서는 국내 디자인팀 관계자의 얼굴을 외워 뒀다가 전시장의 입장을 금지하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 쇼핑몰들은 더 심하다. 노골적으로 명품 패션 하우스들의 이름을 건 ‘짝퉁’들이 ‘OEM’ 혹은 ‘로스’라는 이름을 달고 터무니없이 저렴한 가격에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간다. 이른바 ‘카피캣’들이 날뛰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 나온 옷을 그대로 베껴 불법적으로 생산하여 염가로 판매하면 고부가가치 ‘오리지널’은 외면 받게 된다.
또한 요즘 유행은 아이템이 주도하는 패드적 성격이 강하다. 과거 유행은 한 시대를 풍미하는 룩이 었지만 지금은 6개월짜리 패션 아이템이 세상을 지배한다. 최신 유행에 민감한 한국 여성들은 '카피캣'이라 불리는 짝퉁 고양이라도 소유해야만 왠지 최신 유행에 뒤지지 않는 것 같은 자기 만족감을 느낀다. 이미 패션 캐피털이 만든 유행 바이러스에 점염된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카피캣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 셈이다.
이미지를 따온다거나 다소 비슷한 느낌의 카피는 어느 정도 허용될 수 도 있다. 하지만 분간이 안 갈 정도로의 카피 행위는 근절돼야 한다. 앞으로 카피행위를 막기 위한 디자인 보호 관련 입법 활동과 함께 유통업계에서도 쓰리 아웃제도등을 도입, 카피 행위를 반복하는 업체를 퇴점 조치해야 할 것이다.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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