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철학적인 질문 같지만 디자이너에게 꼭 필요한 질문이며 디자이너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 깔려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미의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시키지 않아도 여배우의 얼굴로 제 각각의 순위를 매기고, TV에 나온 옷이 예쁘네 마네 하고 평가를 내릴 수 있다.
60억 인구 개개인마다의 평가 기준은 다를 지언정, 그래도 공통분모는 있다. 바로 자연스러움이다. 자연스러움의 사전적 정의는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다. 힘들이거나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된 듯하다.’는 것이다. 한 동안 세계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다며 파리지엔느 스타일이 각광 받았던 것도 파리지엔느의 자연스러운 스타일링 태도를 본받고 싶어했던 때문이다.
그런데 복식사적으로 보자면 서양의 복식미학은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로코코, 바로크, 낭만주의 스타일만 봐도 허리는 코르셋으로 꼭 조이고, 고래 힘줄까지 이용해가며 치마를 크게 부풀렸던 스타일이 몇 백 년간 지속되었다. 가는 허리와 넓은 치마의 극단으로 대비되는 비례를 아름다움으로 본 것이다.
20세기 들어서도 귀족 부인이나 영화배우들이 외출할 때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꾸민 아름다움이 한 동안 지속되다가, 여기에서 점차 벗어나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불완전함이 미의 기준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비유하자면 미인의 기준이 올리비아 핫세나 그레이스 켈리에서 케이트 모스로 변화된 것이라고 할까.
동양에서는 예부터 자연스러움을 최고의 미로 보았다. 그래서 자연합일은 예술이 도달해야 할 최고 수준의 가치였다. 이러한 사상이 동양에서는 공유되었고 나라마다 그 방식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회화가 여백을 줌으로써 화면에 자연스럽게 공간감이 생기고 더 살아있는 듯 생기가 나타났다면, 일본의 회화는 자연을 완벽하게 모사하고, 스타일로 여백을 받아들여 작품의 기운생동함은 가질 수 없었다. 복식에서도 일본의 기모노가 자연을 끌어 들이는 방식은 자연의 무늬를 옷에 그리는 것이었던 반면, 우리나라는 옷의 구조나 음양오행의 사상을 옷으로 풀어낸 점이 다르다.
2000년대 뉴욕 컬렉션에서 동양인 디자이너가 대거 등장하여 사람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큰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자연합일의 사상이 세계인의 미의식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교포 2세든, 성인이 다 되어서 패션 공부를 위해 뉴욕에 갔다가 브랜드를 론칭했든, 대부분의 아시아 디자이너는 인터뷰에서 동양성이나 자국의 미의식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프라발 그룽이나 오늘 소개할 필립 림 또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것이고, 4살 때에 미국으로 이민 간 두리 정이 자신의 옷에 한국성이 녹아 있기는 힘들 것이라고 짚고 넘어갔다.
글로벌화 되는 세계에서 국가 정체성은 사실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컬렉션을 보면 분명 공통 분모가 있는데바로 자연스러움이다.
고학수 현디자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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