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라발 그룽은 2000년대 미국 패션계에 아시아 디자이너의 흐름을 만들어낸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2003년에 데뷔한 두리 정부터, 2004년의 타쿤, 2005년의 리처드 채, 2006년의 제이슨 우와 필립림, 2007년 알렉산더 왕까지, 뉴욕 컬렉션은 꾸준히 새로운 아시안 디자이너가 탄생했고, 또한 그들의 브랜드가 지속되고 있다.
오늘 소개할 프라발 그룽은 2009년 데뷔한 아시안 디자이너의 후발 주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네팔과 인도를 거쳐 1999년 미국으로 왔다. 신시아 로리, 빌 블라스, 도나 카란의 디자인실에서 경력을 쌓고 뉴욕 입성 10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컬렉션을 선보인 것이다. 데뷔한지 어느덧 4년 차를 맞아 농익은 자신만의 디자인적 세계를 펼쳐가고 있는 프라발 그룽의 2012년 S/S 컬렉션은 분명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로맨티시즘을 제시했다. 새롭고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이번 컬렉션의 전체 무드를 조성한 컬러는 보라색이다. 색상환으로 보자면 보라색을 중심으로 민트 빛의 하늘색과 로열 블루 같은 파랑계열과, 자주색과 갈색, 옅은 분홍처럼 다양한 빨강계열의 색들까지 그 스펙트럼이 생각보다 넓게 분포되어 있다. 붉은 계열은 특히나 패턴의 일부에 포인트처럼 사용되어 더 눈에 띄지 않지만, 그 작은 역할이 컬렉션의 색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데 분명 일조하고 있다.
이 컬렉션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색은 따로 있다. 바로 흰색과 검정색이다. 옷의 바탕색인 하양은 마치 도화지처럼 여기서 자유롭게 놀아보라고 멍석을 깔아주었고, 그 위에서 보라색의 향연이 펼쳐졌으며, 마지막으로 검정 선들이 화려한 무늬가 깔끔하게 정돈되어 보일 수 있도록 옷의 끝단을 마무리하거나, 코르셋의 조임 끈으로 사용되어 그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 주고 있다.
프라발 그룽은 이번 컬렉션의 중심인 보라색은 팬지 꽃에서 영감을 받은 듯 하다. 꽃 중심이 검정색인 팬지 패턴과 안개가 피어 오르는 듯 몽환적인 곡선들이 화려하게 섞인 프린트가 데칼코마니를 한 것처럼 정확한 대칭을 이루며 전면에 들어갔다. 따라서 굉장히 복잡한 무늬인데도 혼란스럽지 않고 정돈되어 보인다.
꽃 중앙으로 갈수록 검정 같은 짙은 색이 자리잡는 팬지의 특징은 모델들의 얼굴에서 다시 재현되었다. 바로 입술 메이크업이다. 꽃처럼 화사한 색의 립스틱을 바르고 그 위로 입술의 중앙부분을 검은색으로 그라데이션되도록 하여 깊이를 부여했다. 멀리서는 마치 입을 벌리고 있는 듯 한 효과를 준다. 사실 이번 프라발 그룽의 컬렉션이 일본의 사진작가 노부요시 아라키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컬렉션을 본다면 그가 얼마나 제대로 아라키의 주제를 디자인으로 승화시켰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컬렉션은 에로틱한 이미지보다는 몽환적이면서 다른 두 차원이 충돌하는 것 같은 이미지를 드러내는데 더 중점을 두었다.
프라발 그룽의 컬렉션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가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면서 이방인으로 자신이 툭 던져졌던 경험 이 디자인에 반영되는 듯하다.
고학수 현디자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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