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한 한편의 드라마다.
양귀비(AD 719~756년, 본명: 楊玉環))는 절세 미녀에 가무가 뛰어났다. 덕분에 17세 때 현종의 제18왕자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비(妃)가 되었다. 마침 당 현종은 무혜비(武惠妃)가 죽고, 후임을 물색하던 중 며느리인 옥환(玉環)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취했다. 아들 수왕에게는 새로운 여자를 아내로 주었으나 수왕은 아내를 어머니로 부르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종과 양귀비 사이에 안록산이 끼어들었다. 33살이나 나이가 많았던 현종이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하였어도 양귀비는 만족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양귀비와 안록산의 부적절한 관계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다.
당나라에서는 역사상 가장 다양하고 화려한 화장법이 발달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마에 황색을 칠하는 ‘액황(額黃)’과 금색, 청록색, 붉은색 등으로 동그라미를 비롯, 각종 꽃잎의 형상을 만들어 이마에 붙인 ‘화전(花鈿)’은 동양의 독특한 화장법이다. 최남선은 우리의 전통 혼례에서 신부가 찍는 연지곤지가 몽고의 풍습에서 왔다고 하나, 이 화전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화전이 양귀비와 안록산의 은밀한 로맨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전해지고 있다.
이야기인 즉, 어느 날 현종이 궁 밖으로 나들이를 한 틈을 이용하여 양귀비와 안록산이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현종이 갑자기 돌아와서 양귀비를 찾았다. 침실에서 뒹굴던 안록산은 뒷문으로 도망치고, 양귀비는 너무 놀라 침대에서 떨어지며 이마를 땅에 부딛쳐 피가 흘렀다. 이 상처를 감추기 위해 꽃잎을 붙였는데 이를 본 현종이 아름답다고 칭찬을 하는 바람에 양귀비는 물론 궁 안의 여인들이 화전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발전하여 오늘날 중국 전통 헤어스타일인 머리 위의 꽃 장식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화전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 남북조 시기에 송 무제의 딸 수양공주가 인일(人日: 인간사를 점치는 날), 함장전 아래 누워 있는데, 이마에 매화 꽃잎이 떨어져 그 꽃잎 무늬가 삼 일을 씻어도 없어지지 않자 이를 궁녀들이 모방하였다는 설이 있고, 무칙천(武則千) 시대에 한 상궁이 경(黥: 얼굴에 죄명을 묵으로 새기는 형벌)을 가리기 위해 화자(花字)를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양귀비 출현 이전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화전이 양귀비, 그것도 안록산과의 불륜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양귀비와 연결하여 이야기 될 때 더 그럴듯하고 흥미진진한 한편의 로맨스가 되는 것을 어쩌랴.
양귀비와 현종이, 어쩌면 안록산까지 목욕을 하며 사랑을 나누었다는 중국 섬서성의 화청지는 연간 3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 양귀비와 현종의 비극적 사랑을 노래한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는 화청지 전체를 무대로 하는 무용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무극 장한가는 미화 50불이라는 높은 관람료에도 불구하고 항상 만석이다. 시아버지의 처가 되어야 했던 기구한 운명, 한나라의 존폐를 흔들어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수밖에 없었던 악녀가 오늘날 후손에게 커다란 관광 수입을 올려주고 있다. 세상 일은 참 알 수 없는 것 같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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