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젊은 여성들에게 거의 광풍이라 불릴 정도의 샤넬백 선호 사상이나, 국민 가방이 된 루이비통의 가방들은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르신들이 드는 가방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할머니나 중년 여성이 드는 구식이라는 이미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브랜드는 새로운 디자이너를 영입해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명품 브랜드 이미지로 비약하게 된다. 이제는 패션 피플 뿐 아니라 평범한 보통 사람들도 그 이름을 알 정도인 칼 라거펠트와 마크 제이콥스 덕분이다.
그들은 돈 많은 사모님들의 브랜드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장인의 기술력, 때로는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고가의 가격대에도 그만한 가치를 한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대중들에게 최면을 건 것이다.
디자이너의 경우 오랜 역사를 지닌 브랜드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선보이는 쇼는 옛날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시기의 디자인 재해석부터 시작된다. 해당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뒤져 직접 옛 컬렉션의 옷을 들여다보며 지금 시대에는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한다. 지금은 잊혀졌으나 패션사에 한 획을 그은 브랜드 파코 라반은 1966년 ‘새로운 현대적 재료들을 사용해 만든 입을 수 없는 의상 12벌’을 발표하고 브랜드를 설립했다.
컬렉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컬렉션은 현대적 재료인 플라스틱 조각들로 만들어졌다. 디스크 조각에 구멍을 뚫어 철제고리로 연결하여 움직임에 따라 찰랑찰랑하게 흔들리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느 브랜드들이 그러하듯 전성기를 지나 조금씩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었다. 간간히 수건이나 우산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
2012년 봄, 드디어 파코 라반은 오랜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다. 인도 출신의 기발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한 컬렉션을 선보이던 마니쉬 아로라를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한 것이다. 마니쉬 아로라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인체의 형태를 많이 왜곡한 옷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던 디자이너였다.
마니쉬 아로라가 파코 라반의 정신을 잘 계승했을까? 컬렉션에서 처음 등장한 옷으로 이미 판가름 났다. 그는 파코 라반의 철학을 충실히, 그러면서도 현대적으로 탈바꿈 시켰다. 사진 ①은 파코 라반의 대표작이었던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로 만든 옷을 현대화시킨 것이다. 똑같이 작은 조각들로 옷을 만들었는데 무엇이 바뀐 것일까.
파코 라반의 옷은 평면적인 느낌이 강했다. 당시 트위기가 미의 기준이었을 때 평면적인 모델들이 입기에는 적절하였다. 마니쉬 아로라는 현대의 미의 기준에 맞춰 각기 다른 모양의 철판으로 인체의 굴곡을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철판의 크기를 다양화하였다. 볼륨감이 없는 모델도 일종의 착시 효과로 볼륨감이 더 극대화되며 걸을 때 움직임도 더욱 크게 보인다.
광속성 종이, 유리, 광섬유 등으로 유명한 미래주의적 디자이너의 정신을 잘 계승한 마니쉬 아로라의 다음 컬렉션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고학수 현디자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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