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피렌체에는 뛰어난 건축물들이 셀 수도 없이 많지만, 르네상스 꽃을 피워 올린 것은 건축 뿐 만이 아니었다. 그중에 하나가 조각이고 조각가이다. 미켈란젤로. 그를 빼고 르네상스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미켈란젤로가 바로 이 피렌체에서 성장하고 걸작들을 만들었다. 겉에서는 안 보이지만 그가 남긴 엄청난 걸작들이 이 곳 피렌체의 건물들 안에서 숨 쉬고 있다. 그의 흔적들을 더듬어 보려면 먼저 메디치 가문의 대표적인 가족 성당인 성 로렌초 성당부터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메디치 가문이 예술을 후원하게 된 것은 피렌체에서 그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한데, 그런 후원을 가장 먼저 한 사람은 코시모 일 베키오(Cosimo il Vecchio), ‘피렌체의 국부’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당시 피렌체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건축에 많은 신경을 썼는데, 메디치 가문의 성 로렌초 성당, 성 마르코 수도원, 메디치 궁이 바로 그가 주문하고 후원해서 만든 건물이다. 모두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물들이다.

특히 성 로렌초 성당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디자인했으며, 최초의 르네상스 건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 건물 안에 미켈란젤로가 설계하고 조각한 두 개의 무덤이 들어 있다. 미술학원에서 석고 데생을 할 때 자주 그리는 유명한 석고상 줄리앙이 있는 곳이다.
미켈란젤로는 브루넬레스키가 사망한 후 약 30년이 지난 뒤에 태어났다. 브루넬레스키에게 건축을 의뢰한 코시모 일 베키오처럼 미켈란젤로를 어릴 때부터 발탁하여 후원한 것은 위대한 로렌초라고 불렸던 메디치가의 최대 군주 로렌초 일 마그니피코 였다. 코시모 일 베키오의 손자이기도 한 그는 미켈란젤로를 거의 키운 사람이었고, 그의 아들 교황 레오 10세가 미켈란젤로에게 주문하여 우선 로렌초 성당 한쪽 편에 신제의실(Sacrestia Nuova)을 증축하게 한다.

그리고 그 안에 무덤을 만들게 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곳은 예로부터 시장이 열리던 곳이라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 이런 번화한 곳에 메디치 가문은 성당을 짓고 가족의 무덤을 만들어 가문의 위세를 상시적으로 과시하려 하였던 것 같다.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깥에서 보던 번잡함은 사라지고 둥글고 높은 공간이 나타난다.
바로 이 공간에 두 명의 무덤을 조성하게 한 것이다. 줄리앙 그는 교황 레오 10세의 동생이었으며,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그의 아버지 위대한 로렌초였다.
두 무덤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들은 미켈란젤로의 명작 중에서도 명작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미술대학 입시의 주요 교재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조각으로 표현된 줄리앙은 실제 줄리앙과는 닮지 않았던지, 당시 많은 사람들은 실제의 주인공과는 너무 다른 조각이라며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미켈란젤로는 세월이 지나면 줄리앙의 모습을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며 또한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그의 예상대로 줄리앙은 최고의 미남으로 각인되어 버렸다. 참으로 멋진 대응이 있다.
두 무덤 모두 세계 조각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인데, 특히 두 주인공 아래에 누워있는 조각들에 담긴 의미가 크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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