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체로 겉모양이 좀 심플하고 쓰임새 위주로 만들어진 것 같으면 디자인이라고 하기가 쉽고, 그다지 이유를 찾을 수 없이 자유로운 모양으로 되어 있는 물체들이라면 보통 미술품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다. 대체로 생긴 것만 보면 디자인인지 아닌지는 어렵지 않게 가릴 수 있다.
이 장면을 보고 디자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작가가 생각나는 대로 붙여 놓은 듯 여러 가지 모양들을 자기 멋대로 모여 있다. 어찌 보면 놀이터에 들어가야 할 모양들이 길거리에 나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개성이 듬뿍 담긴 자유로운 형태들이 야외 설치 미술작품이라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게 만든다. 눈을 휘감고 들어오는 색깔들을 봐도 순수미술의 자태가 아닐 수 없다. 마치 칸딘스키의 회화를 입체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색면들과 색상들이다. 어울려 있는 형태와 색상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길을 가다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냥 무작위로 모아 놓은 듯하다. 서로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빠져 나가려는 것들을 억지로 붙들어 놓을 것 같다. 만원 전철 안 같다. 다음 역이 나올 때까지는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상태로 있어야 만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걸 순수미술작품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좀 어렵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이 설치 작품같은 모양은 어떤 역할이나 기능을 나름대로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물체들이 서 있는 공간을 보면 광장이나 공원이 아니라 주택과 길이 같이 있는 일상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을 오가는 사람들이나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그저 그런 공간이다. 여기에 장난감처럼 생긴 가로등들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어린이 놀이터에나 있어야 할 물건들이 잘못 놓여있는 게 아닐 까 싶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 형태가 놓인 덕분에 아무런 특징도 없는 공간이 갑자기 독특한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희한하게 생긴 물체들 때문에 주변 공간은 매우 즐겁고 환상적으로 바뀌고 있다. 그냥 사람들이나 자동차가 다니는 공간인데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은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디로 튀어 나가버릴지 모를 것 같은 색상도 잘 따져 보면 재기 발랄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매우 정교하게 디자인되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인접색과 보색들이 튀어 보이지 않으면서도 튀어 보인다. 즉 두드러지면서도 편안해 보이게 하고 있다.
이 곳은 나폴리의 한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목이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을 이처럼 예술적으로 만들면서 오가는 사람들을 환상의 공간으로 드나드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 희한한 형태들이 얼마나 수준 높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공공 공간이란 그저 때깔나는 아이템들을 이리저리 모아 놓고 형식적인 편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공간 자체의 성격을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디자인들은 이처럼 대체적으로 유머러스한 가운데에 순수미술을 방불케 하는 면모들을 갖추며 디자인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이렇게 실험성이 강한 추상 작품 같은 형태들이 화랑 바깥 일상생활 속에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웬만한 세계적 아티스트들도 꿈꾸기 어려운 일이지만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그런 형태들을 대중들로부터 고립은 커녕 환영을 받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러나 고차원의 기능성을 수행하게 만들면서 대중성을 끌어안는다. 그게 성공 요인이고, 순수미술과 다른 점이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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