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지는 ‘꼭 가 보아야 할 여행지 50곳’중 하나로 터키를 추천하고 있다. 그런 추천이 아니어도 터키는 모든 조건을 갖춘 완벽한 관광지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오랜 역사가 그렇고, 그 역사가 만들어낸 흔적이 찬란하며, 자연이 빚은 기암괴석의 풍광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이 나뉘는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동서양 문화가 절묘하게 혼합되어 독특한 예술과 문화를 만들어낸 것도 절로 탄성이 나오게 한다.
세계 관광 14위 나라답게 즐길 거리 역시 다양하다. 벨리 댄스도 그 중 하나다. 아름다운 의상에 현란한 몸 동작의 이 춤은 관광객들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을 뿐 아니라, 어느 틈엔가 관광객과 무희들이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게 하는 즐거움도 여행에 지친 몸과 마음을 풀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벨리 댄스는 고대부터 발전 되어온 춤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터키가 그 시작이라는 점에는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수많은 궁녀들이 술탄에게 간택되려고 관능적이고 섹시한 춤을 추게 되었다고도 하고, 하늘에 제사, 특히 다산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 춤이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은 20세기 초 시카고 세계 무용 박람회에서였다.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명칭으로 불렸던 이 춤의 이름도 이때 'Belly Dance'라는 ‘고유 명사’로 명명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소개되기 시작하여, 2005년도에는 남부대학교 체육대학에 벨리댄스 학사 과정이 개설되었다. 운동 효과가 크며, 특히 생식기 계통이 좋아지고 변비 해소, 요실금 예방, 체형 교정 등에 탁월하다고 한다.
벨리 댄스 복에는 반짝 반짝 빗나는 금속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그 조각은 단순한 원형의 금속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완벽한 동전(금화)을 주렁주렁 매달았다고 한다. 왜 이런 금화를 매달았을까? 일찍이 BC 2세기경 실크로드가 열렸다. 동방의 진귀한 물품들을 낙타에 가득 싣고 이 길을 따라 긴 여행을 하던 캬라반들이 콘스탄티누스(오늘의 이스탄불)에 와서 여장을 풀었다. 이들을 상대로 쉴 곳을 제공하고 돈을 버는 유곽들이 생겨났다. 점차 유곽의 수가 늘어나면서 돈을 많이 지니고 있는 캬라반들을 끌어들이려는 경쟁이 치열해졌다. 서비스가 개발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름다운 무희들을 등장 시켰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기 유곽의 무희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홍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 때도 지금처럼 마음에 들면 팁을 주었던 것 같다. 무희가 팁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뛰어나고 그만큼 인기도 있다는 증거였다. 내 유곽의 무희가 얼마나 금화를 많이 받았는가를 알리기 시작하였다. 받은 금화를 옷에 매달았다. 많이 매달수록 인기 있는 무희였기 때문이다.
이제 벨리 댄스는 세계인의 춤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건강을 위해 기여하는 춤으로 발전, 보급되었다는 점도 주목을 끈다. 또한 일찍이 벨리 댄서의 무희복이 패션 비즈니스의 수단이 되었다는 점도 자못 재미있는 대목이다.
송명건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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