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폐허 속에서 대한민국이 오늘날 같은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인적 자원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은 교육열은 변변한 천연 자원 하나 없는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물론 너무나 높은 교육열이 치맛 바람을 일으키고 가계의 사교육비 부담을 주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 결과로 파생된 우수한 고급 인력들은 한국 경제의 최대 경쟁력이자 튼튼한 자산이 되었다. 패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6,70년대만 해도 주로 패션 학원 출신들이 하이엔드 패션을 이끌었지만 1967년 이화여대, 1969년 건국대, 1971년 성균관대 등의 대학에 45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의상학과가 생겨나면서 많은 패션 전문 인력들이 배출돼 한국 패션 산업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여기에 세계 3대 패션 스쿨 중 하나인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 재학생의 30%가 한국인일 정도다. 이런 고급 패션 인력이 넘쳐나니 대한민국은 가히 ‘패션 강국’으로 불릴 법도 하다.
흔히 패션을 문화 콘텐츠라 부른다. 더불어 21세기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직접적인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있어 청년실업 해소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패션 산업의 역군이 될 패션학도들을 매년 수 만명씩 쏟아내는 패션 디자인 관련 대학이나 전문 학원의 교육은 산업 현장과 거리가 멀다. 10년전 의류학회가 취업한 졸업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학교 교과가 업계 현실과 너무 다르다(40.1%)”, “학교에 업계 정보가 부족하다(27.3%)” 등 학교 교육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현직 디자이너가 참여하는 디자인 크리틱과 패션 특강 확대 등 미미한 변화는 있지만 본질적 변화는 없어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6년 서울 월곡동에서 패션 1번지 청담동으로 의상 디자인과를 이전해 “교육 따로 현장 따로”라는 현실을 극복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동덕여대의 경우는 신선하다. 패턴과 디자인, 일러스트 등의 실기 과목은 종강 때 전문가를 초청해 채점하도록 하고, 디자인 전공 교수들은 다양한 프로젝트 수주를 통한 학생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게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 세계 패션 시장에서 급부상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영국 출신 디자이너들이다. 이는 영국패션협회가 신진 디자이너들을 발굴해 해외 패션 페어에 지속적으로 내보내 글로벌 인지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패션 산업 지원 방식이 기성 디자이너 중심에서 신인 중심의 개인 단위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잠재력 있는 신진 디자이너 발굴은 한국 패션의 미래라는 점을 인식한 다양한 신진 발굴 프로그램이 필요한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 6월에 열리는 ‘인디 브랜드 페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지식경제부 지원으로 시작되어 올해 2회째를 맞은 ‘인디 브랜드 페어’는 처음 시도한 행사였지만 신진 디자이너들을 위한 비즈니스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 김지상이라는 젊은 디자이너를 발굴했다. 가능성은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렵고 마케팅 능력이 부족한 신진 디자이너들이 직접 바이어와 유통업체, 패션업체 관계자들을 만나 실질적인 판로 개척을 하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올해로 30회째를 맞이하는 ‘대한민국 패션 대전’ 역시 패션 디자인 분야에서 유일하게 대통령상이 수여되는 콘테스트로 파리 오트 쿠튀르에서 활동하는 이진윤을 비롯한 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다. 신진 디자이너 발굴을 위해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패션위크 기간 동안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패션쇼 기회를 주는 ‘제너레이션 넥스트’ 프로그램과 젊은 디자이너들의 해외 시장 개척 및 프로모션을 지원하는 서울시의 ‘10 소울’ 프로그램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한국 패션의 미래를 위해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자. 그리고 젊은 그들이 신바람나게 놀(?)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주자. 이를 위해 자신의 역량을 패션 유통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이 그들만의 패션 리그가 자생력을 갖출 수 있게 해주는 자양분이자 향후 글로벌 무대에서 패션코리아의 매운 맛을 보여줄 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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