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에 패션을 입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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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9 오후 3:00:51

이태원 거리를 지나다가 문득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리어카 한 귀퉁이, 낡은 철재 옷걸이에 걸려 슬픈 꿈처럼 흔들리는 에리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체’라고 불렸던 이 혁명가는 군화도 신지 않은 체 총도 없었지만 여전히 티셔츠 중 제일 앞에 걸린 대장이었다.


하지만 추레한 복장의 주인 아줌마가 알려준 그의 새 이름은 1만5천원. 날염된 그의 얼굴을 몇 번이고 만지작대며 고민하던 찰나, 그 여자는 검은 봉지 안으로 그를 포개 넣었다. 대학 운동권 시절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어 금서로 만났던 이념적 대장 '체'는 20년이 지나 1만 5천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진 패션 아이콘으로 변주되었다. 20세기를 보내고 뉴 밀레니엄인 21세기가 시작된지도 12년이 지났지만 20세기 혁명 영웅 체는  티셔츠와 모자, 영화, 평전으로 세기를 넘어 인기를 끌고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사로 “진정한 리얼리스트가 되자”라며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독재에 대항하기 위해 전 세계 혁명 전장을 뛰어다닌 체 게바라. 그는 검은 베레 모자에 아무렇게나 기른 긴 머리칼, 덥수룩한 턱수염, 그리고 열정적인 눈빛, 굳게 다문 입술의 초상화로 60년대에 요절한 제임스 딘 이상의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체 게바라의 대중적인 인기는 RATM(Rage Against The Machine)의 덕분이기도 하다. 90년대 초 탄생해 빌보드차트를 휩쓴 미국의 하드코어 록 밴드인 RATM은 공격적인 사운드에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혁명 등 정치적 저항성이 강한 메시지를 담아 공연 때마다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셔츠를 입거나 기타 앰프에 체 게바라 사진을 붙여 젊은이들 사이에 체 게바라를 되살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RATM의 노래에 맞춰 헤드뱅잉을 하는 20대들에게 체 게바라의 전기를 읽고, 그의 얼굴이 프린트 된 티셔츠를 입고, 그의 브로마이드를 방에 붙이고 체의 얼굴 배지를 가방에 붙이는 일이 동일한 맥락의 문화적 행위인 셈이다. 지난해부터 소녀시대를 비롯한 아이돌 그룹들이 주도하는 케이팝 열기는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 유럽, 미국, 남미까지 확산되고 있다. 소녀시대 공연을 보고 싶어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국을 찾는 외국 팬이 있는가하면, 인터넷의 동영상 사이트 유투브에는 케이팝 섹션이 따로 생길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다. 현지에서 케이팝 스타들이 정식 음반을 내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동영상만 보고 노래와 군무를 따라하는 커버 현상은 60년대 바틀즈와 앨비스 프레슬리 열풍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며 방송국 오디션에 임하는 현상은 더이상 어색하지 않다.


이제 ‘한류’ 라는 우리만의 문화 콘텐츠를 패션 아이콘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케이팝 비즈니스는 음반 판매와 공연 수익이 전부다. 파이를 키워야 한다. 이제 케이팝 스타들의 음악성과 스타성을 보다 적극 활용해 패션 상품화 단계로 접어들어야 할 때다. 특히 끼가 충만한 젊은 디자이너들의 역량과 케이팝 스타들의 글로벌 인지도를 조합하면 충분히 세계적 패션 아이콘으로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상각한다. 현재 우리 패션계에는 가능성있는 패션 키드들이 많다. 선진국에서 공부해 특유의 재능으로 대중적인 스타가 된 젊은 디자이너들, 풋내기지만 선천적인 감각과 열정을 가지고 동대문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디자이너들, 브랜드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해 차곡차곡 디자인까지 배워 실용성이 빛나는 디자이너들 까지 다양한 패션 인재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창조해내는 디자인은 유럽 등 패션 선진국에 비해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 차이가 있다면 인지도나 브랜드 파워가 없어서 소비자가 느끼는 ‘정서적 가치’가 낮을 뿐이다. 결국 우리 디자인에 케이팝 스타의 브랜드를 얹어서 패션의 ‘정서적 가치’를 높여 상품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영역은 의류, 액세서리, 가방, 구두, 화장품 등 무궁무진하다.


케이팝의 열풍과 함께 주목도가 높아진 한류 패션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한류 스타들의 패션을 작품 구상 단계부터 사전 기획할 필요가 있다. 즉 한류 스타 패션의 사전 기획력 강화와 스타 디자이너 육성을 위해 한류 스타와 패션 디자이너와의 연계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패션인사이트가 주최하는 ‘인디 브랜드 페어’와 같은 다양한 수주 전시회를 통한 유능한 신진 디자이너 발굴과 한류 스타와 연계한 '한류 신진 디자이너 육성 프로그램’ 구축이 절실하다.  



유재부 패션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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