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샤넬과 이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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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2 오후 4:37:27

한국 패션의 레전드, 이신우가 14년 만에 돌아왔다. 지난 7일 서울패션위크 마지막 날. '한국 패션의 작은 거인' 이신우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시누(CINU)'라는 브랜드로 컴백 무대를 가졌다. 쇼장을 가득 메운 패션인들은 기립 박수로 그의 컴백을 축하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최초' 라는 낙네임이 붙었다. 1977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최초 참가, 1990년 도쿄 컬렉션 최초 초청, 1993년 파리 컬렉션 최초 참여 등 그는 '한국 패션의 대모'로 불리며 1980년대 여성복 「이신우(ICINOO)」 「오리지날리」 「영우」 「쏘시에」, 남성복 「이신우옴므」, 패션 잡화 「이신우컬렉션」 등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패션 회사를 만들어 디자이너 브랜드 시대를 열었다. 남편은 3선의 고 박주천 의원.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다. 하지만 1998년 IMF 외환위기 앞에 이신우 왕국은 하루 아침에 무너졌다. 부도가 난 후 합정동 본사에서 연 그의 고별 무대인 '터널'이라는 패션쇼를 보면서 필자는 너무 앞서갔던 패션 천재의 몰락에 아쉬운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14년이 지난 현재, 채권단으로 넘어간 6개 브랜드는 지방 가두 매장과 지하철 매대, 홈쇼핑 등에서 팔리고 있지만 그와 전혀 관계가 없다. 그는 지하철을 타지 않는다. 지하철역에 내려가면 그의 자식같은 브랜드가 주인을 잃은 체 저가로 매대에서 팔리기 때문이다. 한국 패션의 하이엔드 헤리티지가 짝퉁(?)으로 팔리는 이 참혹한 대한민국 패션 현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그가 공식 무대에 선 것은 2006년 춘계 서울컬렉션 이후 6년 만이다. 당시 남편의 투병 등으로 정신없는 상황에서 떠밀리시피 패션쇼를 열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남편에 대한 사랑이자 자신을 따라 디자이너의 길을 걷고 있는 딸에 대한 애정으로 무대에 섰지만 준비 부족으로 일회성에 그쳤다. 당시 박 전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혐의로 구속됐다가 감옥에서 폐병을 얻어 투병 중이었다. 결국 남편은 컬렉션이 끝나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둘째 딸 박윤정의 신사동 아뜰리에 한 켠에 있는 그의 작업 공간에는 성경책과 고 박주천 의원의 사진이 놓여 있다. 대학 때 소개팅으로 만나 평생 사랑한 한 남자에 대한 외사랑은 한국 패션에 대한 외사랑과 일맥상통한다.


1934년 기업가로 성장한 가브리엘 샤넬과 이신우는 닮은 점이 많다. 둘은 패션 모더니즘을 통해 패션 판타지를 만들어낸 독보적인 디자이너이자 패션 혁명가였다. 또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대기업화를 이뤄낸 최초의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점과 우여곡절의 파란만장한 삶을 사랑으로 극복하고 이를 패션으로 승화시킨 점도 닮았다. 물론 이신우는 평생 한 남자를, 샤넬은 평생 미혼으로 살면서 여러 남자를 만났지만 두 사람의 패션에 대한 열정 그 바탕에는 늘 연인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일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패션에 대한 열정으로 컴백한 둘은 무대 의상과 영화 의상을 통해 패션과 엔터테인먼트와의 콜래보레이션을 통한 패션의 대중화에도 기여했다. 다른 점이라면 샤넬의 헤리티지는 전 세계 고급 백화점에서 고가에 팔리지만 이신우의 헤리타지는 지하철 매대에서 팔리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패션은 고부가가치 패션이라고 말한다. 그 기저에는 ‘비싸다’는 복선이 깔려 있다. 우리가 알고 았는 명품(?)도 제대로 번역하면 외제 고가품(Luxury Goods)이다. 우리가 외제 고가품을 명품으로 추앙하는 사이 한국 하이엔드 패션은 그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새가 하늘을 나는 것은 좌우 날개가 있기 때문이다. 고가의 하이앤드 패션이 발전해야 중가인 캐주얼도 저가인 SPA도 동반 성장할 수 있다. 스타 브랜드와 인디 브랜드가 공존해야 하는 필연적 이유다. SPA의 탄생 배경에는 하이앤드 패션을 저가에 경험하고 싶은 소비자들의 로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에게 국민 디자이너로 추앙받었던 앙드레김 사후 그의 헤리티지가 계승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샤넬이 추구했던 단순성, 실용성, 대중성, 상업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대를 이어 입을 수 있는 샤넬의 트위드 슈트같은 헤리티지가 일흔을 넘긴 노장의 손을 통해 탄생하길 고대해 본다. 이신우의 컴백을 계기로 그의 최고 헤리티지인 고구려의 부활을 기대하는 패션인들이 많다. 영화 <은행나무침대>와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이신우와 박윤정 모녀의 공동 작품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류 패션 시대, 노장의 손끝에서 부활한 고구려의 혼이 한국 패션의 세계화를 주도해주길 기도한다.


* 본 칼럼은 <패션인사이트>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유재부 :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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