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에서 전통은 뜨거운 감자다.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이든지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을 이어나가는 것은 문화적인 도리이자 의무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문명의 일원. 당대의 기술과 삶이 어울려 앞으로 나아가는 분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무로서의 전통은 무거운 짐이 되어 디자인의 걸음걸이를 저해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과거로 향한 전통은 미래를 향해 있는 디자인과 만나기가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문제가 디자인에서 무시될 수 없으며, 암암리에 전통은 첨단 디자인에 많은 관여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전통은 의무이기 이전에 개인의 창조적 능력을 몇 십 갑절이나 증폭시켜주는 창조적 자산이며, 시간의 흐름에 쉬이 부식되기가 쉬운 디자인의 생명을 끝없이 연장해주는 보약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전통은 의무가 아니라 수단, 무기가 된다. 따라서 전통의 무게가 장중한 문화권의 디자이너들은 이런 관점에서 전통을 매우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젊은 디자이너 예로엔 베르호에븐의 기묘한 테이블은 전통의 그런 특징들을 대단히 잘 활용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산업화된 나무(Industrialized Wood)라는 이름에서부터 디자이너의 재능이 엿보인다. 나무라는 자연과 산업이라는 반자연적 개념이 하나의 디자인에서 만나고 있다. 그 형상은 고전적인 테이블의 실루엣을 가지고 있다. 보는 방향에 따라서 기존의 테이블을 넘어서는 기묘한 모양새들을 하고 있다. 그런 점들이 이 테이블을 대단히 미래지향적으로 보이게 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갖게 한다. 어떤 고전적 가구의 형태를 보이기도 하면서 유기적인 곡면들이 자동차보다도 더 다이나믹하게 흐르고 있다 보니, 나무로만 만들어진 제품이지만 그 어떤 재료 보다도 다이나믹하고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이 디자인은 사물이 가져야 할 전통적인 모습들을 근본적으로 탈피하고 있다. 덩어리이면서도 속이 빈 공간을 가지고 있는 구조이다. 존재와 배경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대단히 철학적인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최첨단 기술 덕분이다. 컴퓨터를 활용한 첨단 기술이 없었다면 아무도 생각할 수 없고 만들 수도 없는 그런 형태이다. 나무만 깎고 다른 어떤 재료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디자인에서 첨단 기술을 막바로 느끼기는 쉽지 않다.
거기다가 디자인 전체를 아우르며 흐르는 유럽 문화의 격조높은 전통적 이미지들은 나무라는 질감이 가지는 문화적 상징성과 어울려서 더욱 깊고 심오한 전통의 무게감을 우리들에게 부과하고 있다. 이 디자인에 적용된 것은 고전적 가구의 실루엣 뿐이다. 우리는 그런 실루엣을 통해 베르사이유 궁을 상상하고, 이런 가구들이 놓여있었던 바로크, 로코코 스타일의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들과 이런 모양의 의자를 사용했음직한 귀족과 왕족들의화려한 모습들도 상상하게 된다. 덜 표현하면서 더욱더 많은 것을 표현하는 매우 동아시아적 여백미를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하나의 테이블이지만 보면 볼 수록 많은 것들이 실타레처럼 풀려나오는 신비한 디자인이다.
이 디자인의 위대함은 모든 것을 직설화법으로 풀지 않고 간접적으로 돌려서 느끼게, 그리고 그런 것들이 중층적으로 융합되면서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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