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시간 웨딩드레스계의 떠오르는 샛별로 마르케사를 소개한 이후 마르케사보다 먼저 웨딩드레스로 이름을 알린 베라 왕을 소개하려 컬렉션을 찾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컬렉션에서 블링블링한 드레스만 주구장창 만들거라 짐작했던 안일한 생각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베라 왕은 뼛속까지 뉴요커였다. 베라 왕의 2012 S/S 컬렉션은 마치 아침에는 센트럴파크를 조깅하고, 저녁에 파티에 참석할 것 같은 스포티하면서 우아한 여성상을 제시했다.
하얀색으로 시작 된 컬렉션은 연노랑과 회색, 하늘색, 분홍색을 거쳐 고급스러우면서 눈을 파고드는 청보라색으로 마감됐다. 소재 또한 하얀색의 아일렛 면과 하늘하늘한 쉬폰으로 된 원피스와 드레스, 그에 대비되는 갑옷처럼 형태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재킷을 믹스 매치했다.
허리를 장식한 페플럼이나 전면에 꽃무늬를 사용하였는데, 실사처럼 정교한 꽃무늬와 그 아름다운 무늬에 물을 탄 듯,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희미하게 날려버린 무늬를 만들어 내었으며 그러한 부분을 펄럭이는 치마 끝, 소매 끝에 두어 역동적이면서 아스라히 사라지는 이미지를 완성시켰다.
베라 왕은 여성의 감성을 건드리는 곡선을 잘 사용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목과 얼굴을 감싸는 칼라 장식이나, 상체를 분할하는 절개선, 다리에 달라붙는 바지의 분할면, 페플럼 끝의 강조된 끝단 선이 여성의 신체를 더 아름다워 보이도록 한다. 즉 여성의 몸과 어울리는 곡선을 잘 사용하는 것이다.
분명 랑방이나 디올의 부피 큰 곡면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그것은 어쩌면 남성 디자이너는 여성의 몸을 객관화 된 오브제로 보고 접근하여 과장된 선을 더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여성 디자이너는 자신의 신체이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어서 나타나는 차이인지도 모른다. 남자 디자이너는 아름다운 모델에게 자신이 만든 옷을 입혀놓고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지만 여성디자이너는 아무래도 그 옷을 입고 활동하는 여성의 삶에 더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칼 라거펠트가 샤넬의 옷을 디자인해도 컬렉션 마지막에는 도도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의 선글라스와 장갑, 높은 하얀 칼라 셔츠를 입은 모습만을 보여 줄 수 밖에 없다. 반면 베라 왕의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색의 버뮤다 팬츠, 스텔라 맥카트니의 복숭아 색의 블라우스와 스키니 진,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펑키한 셔츠와 오렌지색 머리카락, 미우치아 프라다의 무릎 길이 치마 같이 여성 디자이너 자신이 그 브랜드의 상징적인 뮤즈이자, 선보이고 싶어하는 여성상을 실제로 보여줄 수 있다. 모두 장단점은 있다.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특징적인 형태는 허리를 꼭 조이고 엉덩이는 퍼지는 실루엣을 완성해 주는 페플럼이었다. 이 아이템은 확실히 마르고 밋밋한 모델들의 몸매를 더욱 볼륨감 있고 여성스럽게 보이도록 착시현상을 주는데 효과적이었다. 베라 왕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어하는 여성이라면 베라 왕의 정신을 한번쯤 되새겨 보면 좋겠다.
고학수 현디자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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