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의 자존심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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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디자인 기행

2012-03-22 오후 4:16:17


워낙 오랫동안 짓다 보니 이탈리아의 성당들은 한 건물 안에 무수히 많은 사연들을 담고 있다. 피렌체 대성당도 그렇다. 우선 이 성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돔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성당 바로 옆에 있는 종루에 올라가야 한다. 돔 보다는 6m 정도 낮은 85m의 높이라서 이곳에 올라가면 돔의 위용과 아름다움을 최고로 감상할 수 있다.


돔 조망용으로, 그리고 건물 바로 옆에 붙어 있다 보니 이 건물의 진면목을 잘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건물의 외양은 좀 남다르다. 흰색과 분홍색의 대리석에 녹색의 대리석이 포인트로 들어가 있어서 대단히 아름답다. 성당의 옆면이나 뒷면과는 좀 다른 디자인이다.


성당의 앞면과 이미지가 일치하는데, 사실은 건물의 정면이 이 종루를 모방한 것이다.
원래 이 종루를 디자인 한 사람은 ‘지오토(Giotto)’, 르네상스 예술의 기초를 다진 화가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 건물의 화사한 인상은 건축가나 화가의 감수성이 투여된 결과란 걸 짐작할 수 있다.


이 종루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매우 특이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서커스 천막 같이 생긴 건물인데, 모양이 그래서 그런지 대성당의 부속건물처럼 보인다. 매표소 같다고나 할까.


게다가 이 건물은 대성당을 떡하니 가리고 있어서 대성당 정면 사진을 어느 방향에서도 찍을 수 없게 만드는 원흉(?)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바로 철거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이 건물은 대성당보다도 훨씬 먼저인 4세기 경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고 있으며, 대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피렌체를 대표하는 입장이었다. 대성당 때문에 오히려 피해를 본 건물인 것이다. 그런데 이 건물은 동쪽의 청동문으로 유명하다.


흑사병으로부터 피렌체를 구하기 위해 1401년에 공모한 문이었는데, 7명의 화가들이 공모에 참여했다. 바로 이 공모에서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설계한 브루넬레스키와 이 문을 디자인했던 로렌쵸 기베르티(Lorenzo Ghiberti)가 최종 심사에까지 올라가서 격돌했었다. 이것은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지금이야 르네상스가 고딕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갔다는 것이 아주 상식적인 역사이지만 당시는 바로 앞의 고딕 전통과 이후의 역사를 이어나갈 르네상스 전통이 격돌하던 시기였다. 르네상스의 주도자들은 고딕을 혼동과 부조화를 주구했던 타락한 양식으로 비판했으며, 로마를 멸망시킨 게르만의 야만족속인 고트족에 비견될 만큼 야만스럽다고 생각했다. 고딕은 고트족의 양식이라는 비아냥이 들어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 청동문 공모에 격돌했던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는 각각 고딕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꼴이었던 것이다. 물론 기베르티도 르네상스 예술의 초석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전통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귀족의 자손으로 새로운 인간 중심의 사상에 입각해 있었던 브루넬레스키는 기베르티를 고딕양식의 전승자로 보았고, 최종 심사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이 걸린 사태였다. 하지만 결과는 기베르티의 승리였다. 기베르티는 복잡한 조각들을 한 번에 주조할 수 있는 제작 방법을 제시했고, 브루넬레스키는 조각들을 땜질로 붙이는 방법을 제시한 때문이었다.
기베르티의 청동문은 확실히 고딕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다. 장식적인 조각들의 화려한 면모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차분하면서 인간적인 면모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성서의 내용을 조각한 부조들도 르네상스 스타일을 암시하면서도 확실히 고딕적 분위기가 있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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