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간이란 참 희한한 구석이 많다. 물체나 그림을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과 감동을 준다. 예컨대 아름다운 그림을 볼 때와 경치가 좋은 산에 갔을 때 우리는 전혀 다른 차원의 느낌을 받게 된다. 전자가 주로 눈에 들어오는 형상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킨다면, 후자는 오감을 넘어서는 어떤 말 못할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형상은 정확히 눈이라는 감각기관 만을 통하기 때문에 명료하고 판단하기가 쉽지만 공간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인식되거나, 눈을 통해서도 형상이 아니라 공간을 통해 인지되기 때문에 판단하기가 복잡하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이란 것은 디자이너들이 다루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칫 공간의 이런 본질을 모르고 형상을 다루는 습관으로 디자인을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생긴다. 많은 공간 디자인들이 공간과 형상을 혼돈해서 효과적인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공간은 공간적 방식으로 심미감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 정류장을 얼핏 보면 공간이 아니라 형상을 중심으로 디자인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색상이나 기하학적인 형태가 너무나 뚜렷하게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잘 못 생각하면 공간이란 게 눈에 뜨이는 형태를 세워놓는 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디자인을 잘 살펴보면 형상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의 문제를 대단히 잘 해결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통 공간 디자인, 특히 공공 디자인의 경우 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동선이나 공간의 기능 문제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 디자인에서는 그런 부분에 대한 해결의지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공공 공간에 눈에 띄는 상징물 같은 것을 세워 놓은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좀 더 이 정류장을 넓게 보면 디자이너가 초점을 맞춘 부분이 일반적인 시각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류장 주변을 자세히 보면 거의가 수직과 수평선이 교차하는 조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매우 건조한 분위기이다. 직선 밖에 없는 공간적 특징. 여기에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노란색과 검은색이 교차하여 눈을 매우 자극하는 형태에 원뿔형상을 결합하여 이 공간을 전체적으로 활기있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류장 형태가 주변과 조화를 깨는 것은 절대 아니다.
수직과 수평선만이 교차하는 공간에 역시 수직과 수평선을 주로 하는 정류장의 구조는 아무런 마찰 없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단지 사선으로 올라가는 네 개의 원뿔 형태만 전체 공간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하지만 완만한 경사도에 직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원뿔 형태는 수직과 수평으로만 강렬하게 움직이는 주변 형태들에게 포인트는 되지만 전체 질서를 크게 문란(?)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전체와 조화를 이루면서도 조형적 포인트가 되고 있는 것이다. 디자이너의 심도 깊은 조형적 능력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정류장의 백미는 그저 그런, 특히 독일이라는 딱딱한 분위기의 공간을 초현실적 공간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정류장에서는 전혀 기대하지 못한 형태, 장난감이 확대된 듯 한 형태가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에 빚어지는 묘한 공간감은 주변의 공간들을 순식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걸어다님 직한 분위기로 만들어 버린다. 그냥 보아서는 기념비적인 형상으로 빚은 정류장처럼 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고, 시각적 자극을 넘어서는 어떤 분위기가 계속 우리의 뇌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기능적인 해결을 전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장식에 머무르는 것도 아닌, 대단히 묘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디자인이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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