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패션 성공엔 뉴욕시·CFDA·IMG의 조화와 협력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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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부 패션평론가 / 상명대 겸임교수

2012-03-22 오후 3:08:46

현재 전 세계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컬렉션 중에서 글로벌 스텐다드로 삼아야 할 컬렉션을 하나 꼽으라면 뉴욕 컬렉션을 꼽고 싶다. 빅4 컬렉션 중에서 런던, 파리, 밀라노에 비해 가장 늦게 출발했지만 현재 뉴욕 컬렉션은 글로벌 패션위크 시즌 오프닝을 장식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2000년 서울컬렉션 출범에 관여했던 필자의 기억으로 당시 서울 컬렉션의 롤 모델은 뉴욕 컬렉션이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뉴욕 컬렉션을 참관하고 CFDA를 방문해 펀 멜리스 사무국장의 카운셀링도 받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뉴욕 패션의 영광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1990 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뉴욕 컬렉션은 런던, 밀라노, 파리에 이어 제일 마지막으로 컬렉션을 열었다. 패션 3국지에 탐닉된 빅 바이어들의 충동(?) 바잉으로 뉴욕 컬렉션에 올 즈음엔 바이어들의 주머니는 텅텅 비어 상당수의 바잉에 쓸 돈이 없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상업적인 당시 뉴욕 패션은 바이어나 프레스의 관심 저편에 있었다. 단지 가능성만 안정받은체 말이다.


70년대 오일 쇼크로 인해 파리 오트 쿠튀르 시장이 쇠퇴하면서 도나 카란과 캘빈 클라인, 랄프 로렌과 같은 미국 브랜드가 세계 시장의 주목을 받았지만 여전히 파리나 밀라노 디자이너에 비해 한 단계 낮은 취급을 받았다. 이러한 뉴욕 패션을 주목 받게한 일등공신은 마크 제이콥스나 톰 포드와 같은 젊은 뉴요커 디자이너였다. 이들이 <루이비통>과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면서 유럽의 헤리티지와 미국식 모던의 만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3인방 선배들이 시작한 미니멀한 매력을 뉴욕 패션의 색깔로 변주시켰다.


이쯤되자 세계 패션이 뉴욕 패션을 주목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아니 뉴욕 패션에 대한 관심이라기 보다는 뉴욕의 젊은 다자이너에 대한 군침 삼키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 하다. 존 갈리아노나 알렉산더 맥퀸 같은 런더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주목하던 유럽 명품 하우스들의 스카우터들이 뉴요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이제 뉴욕 패션도 비상할 수 있는 도약의 기회가 온 것이다.


뉴욕 패션의 대모, 펀 맬리스
이 때 그 기회를 성공으로 연결 시킨이가 바로 미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CFDA)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펀 맬리스였다. 1943년 2차 세계대전 중에 램버트에 의해 '프레스 위크'라는 타이틀로 시작된 뉴욕의 패션쇼 문화를 50년 뒤인 1994년 그녀가 재직 중이던 CFDA에 의해 '뉴욕 패션 위크'로 다시 부활해 런던, 밀라노, 파리에 이어 4번째로 패션쇼를 열었다.


하지만 마지막 스케줄 때문에 뉴욕 패션은 파리 패션을 따라한다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펀 멜리스는 "뉴욕 컬렉션을 제일 먼저 보고 싶다"는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의 말을 듣고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헬무트 랭을 뉴욕 컬렉션에 영입해 뉴욕 컬렉션 순서를 빅 4 컬렉션 일정 중에서 맨 앞으로 가져가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대부분 불가능하다고 말했고 설상가상으로 반대하는 미국 디자이너도 많았다. 결국 조화와 설득에 능한 펀 멜리스는 헬무트 랭을 중심으로 앞당긴 컬렉션에 참가하는 디자이너와 기존 대로 파리 컬렉션 다음에 패션쇼를 여는 디자이너로 이원화 해서 뉴욕 컬렉션을 열었다. 한 두번 컬렉션을 치르자 앞당겨 쇼를 한 디자이너들의 수주량이 급등했다. 결국 CFDA 디자이너 전원이 앞 당겨진 뉴욕 컬렉션에 참가하게 됐다.


듬직한 체구의 미세스 펄 멜리스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브라이언 파크의 야외 텐트쇼장에서 컬렉션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Y&Kei의 뉴욕 컬렉션 진출에 도움을 준 것도 그녀였다.


패션 캐피털 뉴욕을 건축한 줄리아니
뉴욕 패션의 성공에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의 공로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뉴욕을 목숨만큼 사랑했던 줄리아니 시장이 뉴욕 시장에 취임할 때만 해도 현재 뉴욕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깨진 유리창'이라 불리며 연간 60만명 이상의 범죄가 발생했던 뉴욕은 지하철에서 쥐들이 뛰어다니고 밤늦은 시간에는 강도들 때문에 관광객들이 거리를 못다닐 정도였다.


이때부터 뉴욕을 패션 캐피털로 만드는 관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먼저 지하철의 낙서를 지우고 경범죄를 철저히 단속하고 기존 경찰력에 더해 상인들의 자원을 받아 사설 경비원을 대폭 늘렸다. 뉴욕 소호 거리를 점령하고 있던 부랑아들을 허드슨 강가로 밀어내고 아울러 같은 이탈리아계 부동산업자 출신인 LVMH그룹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과 손잡고 유럽의 럭셔리 하우스들의 빌딩을 소호로 유치하면서 새로운 쇼핑 도시 뉴욕을 건축했다.


나아가 뉴욕시가 앞장서 뉴욕 컬렉션을 홍보하고 관광객들을 위해 뉴밀레니엄인 2000년 뉴욕 거리에서 갈라 패션쇼를 선보여 패션 관광도시 뉴욕의 새출발을 자축했다. 디자이너가 원하면 도로를 막고 패션 쇼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뉴욕의 백화점들은 뉴욕 컬렉션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건물에 걸고, 시장은 모델과 뉴욕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연단에 서서 뉴욕 컬렉션 오프닝 선언을 했다. 여기에 뉴욕에 세금을 내는 다자이너라면 미국 디자이너가 아닌 타국가 디자이너도 차별없이 대환영했다. 


결국 세계 각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기회의 땅 뉴욕으로 향했고 알렉산더 왕, 제이슨 우, 프로발 그렁 같은 아시아계 디자이너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뉴욕의 열린 마인드 덕분이었다.


패션쇼를 최고의 이벤트로 만든 IMG
뉴욕 컬렉션의 대행사인 IMG의 공로도 인정해야 한다. 뉴욕 컬렉션이 남다른 특징 중 하나는 대대적 스폰서 시스템이다. 뉴욕시, CFDA와 손잡고 마케팅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뉴욕 컬렉션의 공식 명칭인 뉴욕 패션위크 앞에 메르세데스 벤츠라는 타이틀 스폰서를 붙인 것이 바로 IMG다.


스포츠 마케팅회사인 IMG는 미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CFDA)와 손잡고 2001년 뉴욕 패션위크를 사들이고 IMG 패션을 만들고 패션 이벤트 사업에 진출했다. 아울러 CFDA 펀 멜리스 사무국장을 IMG 부회장으로 영입하면서 부족한 패션쇼 노하우를 스포츠 마케팅 툴과 접목시켰다.


뉴욕 컬렉션이 상업적인 컬렉션으로 거듭나는 계기였다.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IMG는 메르세데스벤츠 호주 패션위크, 메르세데스 벤츠 토론토 패션위크, 메르세데스 벤츠 러시아 패션위크, 메르세데스 벤츠 베를린 패션위크 등 프랜차이즈 패션위크 사업으로 확장시켰다. 주목할 사실은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도쿄 컬렉션이 메르세데스 벤츠란 타이틀 스폰서를 선물한 IMG와 손잡고 뉴욕 컬렉션을 벤치마킹하며 5대 컬렉션 진입을 위해 베를린 컬렉션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한국 패션을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부럽고 화난다.


서울시와 대행사의 업그레이드를 바라며...
바다 건너 뉴욕의 패션쇼 동영상을 실시간 유투브로 전 세계인들이 보고, 스타일닷컴을 비롯한 인터넷 사이트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관람평이 올라오고, 좋아요 투표가 이루어진다. 이제 감성적인 아날로그 산업인 패션쇼도 디지로그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시즌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2000년 통합과 글로벌이라는 화두로 시작한 서울 컬렉션은 지난 10년간 얻은 부분과 잃은 부분이 공존한다. 신진 디자이너와 기성 디자이너의 분열이 잃은 것이라면 글로벌 바잉쇼라는 성과를 얻었다.
특히 서울시가 서울패션센터와 진행한 디자이너들의 글로벌 육성 브랜드 사업인 10 SOUL 과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창작 스튜디오 운영 등은 한국 패션의 세계화에 한걸음 내디뎠다 할 수 있으며 젊은 디자이너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날고 기는 세계 4대 컬렉션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뛰기만 해서는 안 된다.


한류라는 호기가 왔음에도 이를 이용해 한류 패션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글로벌 스텐다드 시스템과 노하우가 부족하다. 전략 없는 바잉 시스템이 그렇고, 전술 없는 컬렉션 시스템이나 모성애 없는 신진 디자이너 인큐베이팅 시스템도 문제다.


1989년 SFAA 컬렉션을 우리 나라 컬렉션의 효시로 삼는다면 20년이 넘는 서울 컬렉션이지만 몇년 전에 시작된 베를린 패션위크 보다도 못하다. 결국 패션 디자이너와 서울시, 대행업체간 3박자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해외 컬렉션 취재와 첨가를 통해 글로벌 스탠다드로 눈높이가 높아진 프레스와 디자이너에 비해 서울시와 대행업체의 행보는 너무 느리고 답답하다. 2안3각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호흡을 맞추고 어깨동무를 하는 것이다.


오는 4월 2일 올림픽공원 평화 광장에서 열리는 2012 춘계 서울패션위크가 삐걱거리고 있다. 갑자기 바뀐 시스템 때문에 디자이너와 서울시, 대행업체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하지만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두 개인 이유는 남의 아야기를 자신이 하는 말보다 두배로 들으라는 것이다. "독불장군에게 미래 없다"는 모 정치인의 발언이 생각난다. 이제 서로에 대한 불신이나 서운함은 잠시 내려 놓자. 그리고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 최고의 행사로 만들어 보자. 서울패션위크가 집안 잔치가 아닌 해외 프레스와 바이어가 찾아오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패션 행사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 패션에서 필요한 것은 그것이 디자이너든 공무원이든, 대행업체 직원이든 한 사람의 열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이 필요한 때다. 부디 새로 창립하는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와 서울시는 서울디자인재단이라는 공간 속에서 의기투합해 동대문 상권을 한국의 소호 거리로 만드는 데 함을 합치면 어떨까. 공동의 목표가 생기면 화합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 같은 필자의 생각은 로망일까 노망일까? 부디 그 바람이 해피엔딩 로망으로 마무리되길 기대해 본다.



유재부 상명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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