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쇼의 가장 큰 의의는 다 큰 어른들에게 환상을 준다는 것이다. 마치 꼬마 아가씨들이 신데렐라나 인어공주에 빙의되듯, 여성들은 패션쇼를 보면서 ‘내가 저 옷을 입는다면, 저 가방을 든다면’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머릿속에서 이 옷도 입어보고, 저 옷도 입어보고, 수백 번 입었다 벗었다,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 여성들이다. 머릿속에서.
하지만 드레스가 나오는 패션쇼는 조금 다르다. 이건 완전히 여자 어른을 위한 동화인 셈이다. 왕자님이 무도회에 초대해 주면 모를까, 차마 현실에서 입어 볼 기회조차 없으니 그냥 입 벌리고 예쁘다만 연발할 수 밖에.
마르케사의 패션쇼는 특히 그렇다. 컬렉션 전체가 온통 반짝반짝 하는 드레스뿐이다. 그리고 그 드레스들은 분명 다른 디자이너들이 패션쇼 말미에 끼워 넣는 드레스들과도 차별화 되는 점이 있다. 디자인적으로 말이다.
우선 마르케사 드레스의 색은 고명도에 중채도의 색이 주를 이룬다. 즉, 약간 탁한 파스텔 계열이 많다. 이러한 색상군은 너무 어린 소녀스럽지 않고, 고급스러우면서 여리여리한 인상을 준다. 해맑고 앙증맞은 소녀보다는 우아한 여신 같다.
물론 금사, 은사를 사용한 반짝이는 드레스나, 눈을 파고드는 핫핑크, 선홍빛 같은 강렬한 색의 드레스도 종종 선보인다. 그런데 드레스란 다른 옷에 비해 면적이 넓고 부피가 큰 옷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강렬한 색을 전면에 넣게 되면 사람이 옷에 압도 당할 수 있다.
그래서 마르케사는 한 벌의 옷에 두 가지 색 이상을 넣지 않는다.
금사가 들어가면 검정으로 눌러주거나, 장식을 넣어도 동일 계열의 색으로 포인트를 준다. 가장 강렬한 색 대비는 흑백 대비 정도다.
드레스와 같이 장식이 많은 옷은 까딱 욕심 부리면 유치하고 조잡해 지기 쉽다. 부피도 크고, 무늬도 많고, 색까지 여러 가지 들어가면 하나의 옷을 구성하는 요소가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르케사는 색을 제한하여 화려한 분위기와 안정적이고 우아한 인상이라는 상반된 두 이미지를 한 옷에 구현한다. 색의 절제는 곧 고급스러움으로 직결된다.
또 한가지 마르케사의 드레스가 동화 속 공주님의 드레스와 구별 되는 것은 범상치 않은 구조 때문이다. 매번 상체는 조여주고, 치마부분은 넓게 퍼진 X라인의 드레스만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 구조가 바뀌면 실루엣이 바뀐다.
사진에 보이는 드레스들은 마치 천이 살아있어 자유롭게 여성의 몸에 휘감긴 듯하다. 단순히 앞판, 뒤판이 붙는 형태가 아니라, 앞에서 시작한 천이 여성의 부드러운 곡면을 타고 돌아 다시 앞으로 연결된다. 그리하여 마치 살아있는 듯 역동적이고 새로운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마르케사가 다른 드레스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고학수 현디자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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