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디자인의 이름을 구성하고 있는 프로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랑스의 시인 프로스트가 맞다. 이탈리아 디자인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자신의 명성을 처음 세계에 각인시켰다고도 할 수 있는 문제작이며, 본인이 좋아했던 소설가의 이름을 따서 디자인한 유명한 작품이다. 모양만 보면 18세기 풍의 앤틱 가구에 점만 찍어서 디자인이라고 내놓은 것이다. 모양과 디자인의 유명세만 보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디자인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디자인인가?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 디자인이 디자인의 역사에서 가지는 위상은 대단하다. 하지만 맨 눈에는 그저 디자이너가 장난 한 번 해본 것 같은 디자인, 혹은 순수미술을 이미테이션한 디자인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디자인의 묘미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디자인이 출현한 당시의 배경과 디자이너의 생각을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이 디자인은 1978년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자신이 속해있던 디자인 그룹 알키미아의 전시에 선보였던 작품이다. 디자인이라기 보다는 ‘작품’이라는 말이 적합한 것 같다. 하지만 그저 장난 한 번 해본 것 같은 이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판매가 되고 있고, 당시 디자인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문제작이었다. 당시 디자인이 직면했던 시대상황을 고려해 보면 이 디자인이 보기와는 달리 당시의 사회통념에 저항하는 대단히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1970년 대 말은 흔히 말하는 기능주의적 디자인이 아직까지는 기세등등한 그런 시기였다. 건물이든지, 제품이든지, 가구든지 모두가 재료의 효용성, 물리적 기능성만을 추구하면서 무채색의 외피에 기하학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 보면 그런 기세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확 꺾어져서 포스트 모더니즘적 디자인들이 나타난다. 말하자면 이 디자인은 디자인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혁신적인 디자인 운동의 맨 앞줄에 있었던 것이다. 자유로운 작가의 개성을 표출한 시도라기보다는 절벽처럼 거대하고 가파르게 솟아 있던 기능주의 디자인이라는 벽에 머리를 들이받았던 디자인이었다. 골리앗에 대항하는 다윗 같은 디자인이었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지금 이 디자인이 여유롭고, 순수미술작품을 편하게 차용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혁명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런 디자인을 스타일만 보고 온실에 화초처럼 이 시점에서 그대로 흉내내는 것이나, 요즘들어 개성적인 디자인이랍시고 자유분방하게만 스타일 실험만 하는 디자인들을 같은 부류의 디자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멘디니가 했던 방식 말고 지금 시점에서 부조리한 큰 벽을 찾아서 혁신을 꾀하는 돈키호테같은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멘디니의 이 의자가 단지 실험적인 가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디자인 한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앤티크한 가구에 자신의 색깔을 입혀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솜씨는 그냥 키치적인 방법만으로는 되기 어렵다. 마치 피카소가 자전거 부품을 활용해서 새로운 자신의 작품을 만든 것처럼 기성품을 활용한 맨디니의 솜씨는 색감각이나 재료를 다루는 솜씨에 있어서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보인다. 이 디자인에서 우리는 멘디니의 강한 개성이 먼저 느껴지지, 앤티크한 가구의 존재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실험적 디자인을 하는 것도 좋지만 실험이 실험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점을 이 푸르스트 의자는 어설픈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훈계하고 있다. 왜 그럴까?
최경원 현디자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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