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한 사람의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 일당 백이란 말도 있지만, 디자인과 같은 문화 예술 분야에선 일당 수십만, 수백만이 되기도 한다. 멘디니를 비롯한 이탈리아 현대 디자이너들은 일당 수백만의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디자이너 한 사람의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 일당 백이란 말도 있지만, 디자인과 같은 문화 예술 분야에선 일당 수십만, 수백만이 되기도 한다. 멘디니를 비롯한 이탈리아 현대 디자이너들은 일당 수백만의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탈리아 현대 디자인의 배후 인물
에또레 쏘사스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산업 디자이너 역할을 해왔고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한 2인자 정도로 여겨진 면이 많았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현대 디자인이 밀라노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 가는 데에 있어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멘디니였다.
왜냐면 그는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그 유명한 도무스(Domus)나 까사벨라(Casabella) 같은 세계적인 잡지의 편집장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탈리아의 잡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잡지가 아니었고, 역할이 대단히 컸다. 주로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기업과 훌륭한 자질을 가진 디자이너들을 연결시켜주는 일들을 이탈리아의 유명한 잡지들과 그 편집장들이 해 주었다. 편집장 멘디니가 했던 일들은 이탈리아 디자인이 아직 여명기에 있을 때, 직접 국내와 국외를 날아 다니면서 새로운 디자이너들을 발굴하고 이들을 이탈리아 기업과 연계시켜서 각 기업들이 뛰어난 상품들을 만들게 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 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이런 일들을 했으니, 거의 이탈리아 디자인은 멘디니의 손으로 일구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자이너로서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눈에 잘 뜨이지 않았던 것뿐이다. 1980년대부터 활약했던 대부분의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들은 거의 그렇다고 봐야 한다. 포스트 모던 건축으로 명성을 떨쳤던 미국의 마이클 그레이브스나 스페인 빌바오 뮤지엄으로 유명해진 프랭크 게리, 비엔나의 한스 홀라인, 지금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자하 하디드 등이 모두 편집장 알레산드로 멘디니와 관련이 있다. 지금도 그가 디자이너로서가 아닌 전시 큐레이터로서도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력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 멘디니같은 사람을 와인 오프너 디자이너로만 이해하는 것은 많이 부족하다. 그는 197,80년 대 이탈리아 디자인이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배후 인물이었던 것이다.
디자이너 멘디니
이런 역할과는 별개로 디자이너 멘디니의 면모도 매우 훌륭하다. 그가 잡지사를 그만두고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50세부터였다. 사실 그가 디자인을 하게 된 것은 예견된 일이기도 했지만, 우발적인 것이기도 했다. 디자인을 해야 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잡지사를 갑자기 그만두면서 하게 되었기 때문에 계획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디자이너 멘디니의 면모도 대단했다. 우선 디자이너 멘디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알레시(Alessi)이다.
이탈리아 주방용품 회사로서 1990년대부터 단지 하나의 회사가 아니라 세계 디자인의 본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유명한 디자인들을 많이 생산했던 기업이었다.


이 회사가 그런 활약을 하게 된 데는 멘디니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알레시의 3대 회장인 알베르토 알레시에게 디자인 고문을 해주면서 기업 알레시가 오늘날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방용품회사였던 알레시가 이렇게 큰 데에는 멘디니의 조언이 있었고, 그가 그렇게 만들었다.
단지 한 두 개의 아이템을 디자인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여러 디자이너들을 셀렉팅해서 세계의 주목을 끄는 프로젝트들을 만들기도 했고, 기업의 방향에 관해 정확한 조언을 했다. 안나 G와 같은 최고의 히트 상품도 디자인해 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알레시에서 멘디니는 주체할 수 없는 존경의 대상이다. 멘디니는 많은 기업들과 일을 하면서 수많은 업적들을 남겼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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