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에 대한 말들을 듣다 보면 대체로 현실과 괴리되는 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세계관에 입각한 논리들을 무분별하게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강조하는 좋은 견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분별하다는 말의 뜻은 현실의 문제를 지적하고 그것에 대한 진단을 내리는 관점이나 맥락들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 자기가 몸담고 있는 시간이나 공간에 대해 정확하게 고민하고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전혀 공유하는 점이 없는 사람들의 견해를 이리저리 짜집기 해서 마치 자기의 말인 듯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게 아무리 멋 있고, 의미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지 현실에 무감각하고 무기력하다면 그건 남의 말의 권위에 기대 자신의 입지를 높이려는 부정적 의지를 의심받을 만하다. 물론 현실에 힘이 없다면 어떤 이론들도 시간에 금방 도태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생각들이 의도와는 다르게 사회적 흐름에 걸림돌이 되기가 쉽기 때문에 문제는 커진다.
지금 한국 디자인의 최고 문제는 바로 이런 디자인이 구조적으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위의 디자인은 테이블인데 비사짜(bissaza)라는 타일 회사의 프로젝트로 만든 것이다. 독일의 기능주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게 뭐에 쓰는 것인가를 문제 삼을 테고, 미국의 상업주의적 경향에 절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게 무슨 방법론과 기획에 의해 만들어졌고 얼마나 팔렸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디자인의 윤리 운운하는 사람이라면 이거야 말로 계급주의적 불평등을 조장하는 디자인이라며 비판의 칼날을 대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그냥 타일을 겉에 붙인 테이블일 뿐이다. 실험작이라서 양산하지도 않고, 비사짜 화랑에 전시만 되어 있다. 하지만 이 디자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적지 않다. 타일로 만들어진 물건이 타일의 속성을 모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일. 물리적으로 단단하고, 시각적으로는 변화가 쉽지 않은 재료다. 하지만 토드 분체는 그런 타일 위에 타일의 속성과는 전혀 상반되는 가치를 담아놓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뭐가 어른 어른거리는 게 목욕탕에 들어온 게 아닌가 하고 착각하기가 쉽다. 그냥 장식으로 여러 가지 색의 타일을 붙여 놓은 게 아니라 빛을 받은 물과 같은 이미지를 타일로 구현해 놓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여느 디자인에서 그런 것과는 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형상도 아니고, 기능적인 이유도 없다. 물론 타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다고 감동받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교육을 많이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쉽게 알 것이다.
이 디자인이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은 단단한 실용적 물건에 자연의 속성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좀 어렵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 물론 그런 미학적 냄새가 풍기는 말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알아차릴 것이다. 이런 디자인을 앞에 두면 사실 설명이 좀 구차해 진다.
그냥 좋다. 이럴 때는 무엇이 좋은 가를 가만히 생각하는 것이 훨씬 났다. 눈이나 몸이나 지갑(?)이 좋지는 않지만 마음 깊은 곳이 좋아졌을 것이다. 아무 디자인이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기획을 아무리 잘 해도, 기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아무리 싸도 그런 경지에 하나의 디자인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디자인에 낯이 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디자인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먹는 것만 좋은 거 찾지 말고, 이젠 보는 것도 좋은 것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어설픈 계급논리는 비추지 말자. 이런 디자인은 가지지 못한다고 해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까… 설사 그게 이 테이블을 쓰는 것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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