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대 일본 디자이너 그룹의 파리 진출 성공 이후로 일본 패션은 세계 패션계에 큰 영향력을 미쳐왔다. 이세이 미야케는 플리츠라는 소재로 옷을 조각품으로까지 승화시켰다는 극찬을 받았고, 레이 가와쿠보는 다른 패션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디자이너 위의 디자이너로 칭송 받았으며, 요지 야마모토는 동양에서 온 도인 모습으로 동양적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어떻게 풀어 낼 수 있는가를 제시했다.
그들이 서양의 패션계에 충격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서양 패션만이 전부라고 생각해 왔던 사람들에게 단지 전통복식에서 따온 이미지로의 오리엔탈리즘이 아닌, 동양의 정신이 담긴 옷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90년대를 지나면서 세 디자이너는 패션계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고, 그들의 동양적 해석을 넘어설 아시아 디자이너는 없을 듯 보였다. 하지만 무엇이든 정체되면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하물며 무엇이든 최신의, 신선한 것을 흡수하는 패션계에서야.
2000년대를 맞아 이번에는 뉴욕 컬렉션에 동양인 디자이너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새로운 동양의 파워를 기대했다. 그러나 80년대의 일본 디자이너 그룹만큼 패션계 전반에 걸쳐 지속적이고 폭발적인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뉴욕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이민 2세, 3세들로 아시아와 뉴욕이 결합된 새로운 스타일은 제시했으나 정신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10년이 지났다. 여전히 세계 곳곳의 많은 디자이너들은 자국의 전통 문화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 구관이 명관인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대안이 나타날 수 있을까? 오늘 소개하는 일본의 듀오 디자이너 브랜드 Commuun은 어쩌면 정체되어 있는 1세대 디자이너들의 대안이 될 가능성이 보인다. 이들은 21세기에 걸맞는 동양성이 녹아 든 매력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결코 직설적이지 않고, 은근하게 말이다.
이번 컬렉션에서 보여준 스타일도 마치 동양의 화법을 보는 듯 했다. 결코 속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진의는 숨겨둔 채 알 듯 모를 듯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잘 나타내었다.
좀더 세분화 된 시각으로 살펴 보자. 살짝 비치는 소재가 주는 매력을 십분 발휘 했다.
반투명함과 불투명한 소재의 적절한 비례의 조합, 그리고 다시 반투명함과 반투명한 소재의 중첩이 주는 은근한 효과를 잘 활용하였다. 옷의 사회적 기능에 충실 하고자 가릴 곳은 가려지도록 어색함 없이 비례를 특히 잘 조절했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대표적인 무늬로 스트라이프를 사용하였다. 스트라이프는 현대적이고 도시적이며 이성적인 감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주름을 잡아 물결치는 듯한 곡선으로 표현되어 자연스럽고 감성적인 이미지를 주기도 하였다.
컬렉션의 앞 부분은 흑과 백의 의상이 주를 이루고, 후반으로 갈수록 새파란 색을 포인트 칼라로 쓰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흑, 백, 빨, 노, 초, 파 등 총 천연색을 배치하여 피날레로 시선이 집중되도록 컬러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디자인적 측면 말고도 그들의 작품 세계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분명히 있다.
고학수 현디자인 연구소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