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이탈리아의 디자인 뒤에는 제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나타났던 미래파 운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의 혁신적인 비전들은 비록 파시즘과의 연대로 귀결되기는 했지만 이탈리아의 고전적 전통 속에서 현대를 잉태하게 만든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속도에의 찬양
1908년 마리네티는 밀라노 어느 교외에서 차를 달리고 있었다. 액셀레이터를 밟았지만 얼마나 빠른 속도인지는 감이 없었다.
자동차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으며, 그 이전의 어떤 빠른 교통수단도 자동차 보다는 훨씬 느렸기 때문이다. 속도에 대한 아무 감각 없이 그냥 달렸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 자전거 두 대가 나타났다.

멈출 사이도 없이 급하게 핸들을 틀었다. 가속이 붙은 자동차는 옆에 있는 도랑에 쳐 박혔고, 다행히 마리네티는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을 보는 그의 생각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속도감. 이전에는 세상에 어떤 위대한 사람도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신이 내려다 준 것도 아니고 순전히 인간의 힘으로 만든 기계들이 가져다주고 있는 문명의 새로운 힘의 혜택이었다. 이 앞에서는 그 어떤 지식인들의 미적 관능주의의 데카당스한 주장도 헛소리일 뿐이었다.
미래파 속에서 피어오르다
이후로 마리네티는 속도와 기계문명, 그리고 그런 기계문명이 벌이는 과거와의 싸움에 대해 열렬한 찬양자가 되며, 급기야 1909년 <르 피가로>지에 기계문명을 찬양하는 ‘미래파 선언’을 하게 된다. 이 선언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건축, 미술, 문학 등에서는 미래파 운동이 불꽃처럼 일어나게 된다.
인상파, 입체파, 야수파 등이 나타나면서 지적인 현대 미술의 흐름을 프랑스에서 만들어갔다면, 이탈리아에서는 이처럼 기계문명을 무조건 찬양하는 ‘미래파’가 문화를 주도하게 된다.
그러나 지적이거나 도덕적인 측면 보다는 현대 기계문명에 과도한 의미를 두다보니 미래파는 결국 당시 기계문명을 바탕으로 하고 있던 이탈리아 파시즘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파시즘의 강력한 지지 아래에서 이탈리아 미래파는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미래파가 만든 현대문명이라는 공간, 전통의 고리타분함이 범접할 수 없는 그 공간에서 꽃을 피운 것은 미술이 아니라 디자인이었다. 안토니오 산티엘라를 보면 그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는 건축가였으나 아쉽게도 20대에 요절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남겨놓은 건축물들의 설계는 현대문명의 설계도였다.

그의 설계 중에서는 고층 빌딩과 공항과 같은 것들이 많았는데, 그가 살았던 당시에는 항공기가 상용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게다가 고층빌딩 같은 것들도 꿈꾸기 어려운 시대였는데, 그는 마치 미래를 예견이라도 한 듯 설계도를 그렸고 그것은 정확히 맞았다. 순수미술이 기계문명을 옆에서 찬양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건축이나 디자인은 그런 기계문명을 직접 만드는 주역이 된다.
비록 파시즘이라는 도덕적으로 취약한 정치세력의 전폭적 지지가 있었긴 했지만,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이탈리아 현대 디자인은 이런 바탕 위에서 대단한 움직임들을 시작하면서 눈부시게 발전했다.
베스파와 같은 스쿠터는 지금까지도 팔리고 있는 이탈리아 현대 디자인의 최고 수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외에도 이탈리아적인 성격을 가진 디자인들이 파시즘 시대를 전후해서 많이 만들어졌다.
다들 기계문명에 대한 자신감과 이탈리아적 조형미가 돋보이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디자인이 아무리 순수미술과 다르다고 해도 이탈리아에서는 그런 말을 하기가 어렵다. 그 이면에는 미래파의 큰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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