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과 이탈리아 디자인, 그리고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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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디자인 기행 ⑤

2012-01-30 오후 3:15:33


이탈리아를 찾는 사람들, 혹은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필히 거쳐가는 곳이 밀라노 중앙역이다. 건물의 규모나 아름다움, 유럽에서 차지하는 위치 면에서 밀라노 중앙역은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그러나 밀라노 중앙역이 이탈리아 디자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잘 모른다.


밀라노 중앙역과 파시즘
밀라노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위풍당당한 밀라노 중앙역을 거쳐 가지 않을 수 없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대하게 되는 건물의 압도적인 규모와 고전주의적인 양식은 여행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유럽의 여러 기차역 중에서도 밀라노 중앙역은 첫 손에 꼽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건물을 밀라노 대성당 만큼이나 유심히 살펴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규모에 압도되던, 양식에 탄식을 하든 놀라기는 하지만 그러고는 그냥 지나갈 뿐이다.


그것은 이 건물이 압도적인 위용 말고는 그다지 읽거나 감동받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크기는 큰데 밀라노 중앙역은 그야말로 여름에도 썰렁한 느낌을 줄 정도로 스산하다. 같은 돌로 만들어졌어도 밀라노 대성당은 다르다. 크긴 하지만 압도적이라기 보다는 아름답고 유연하다. 밀라노 중앙역은 돌이 아니라 철로 만들어졌을 것 같은 그런 강한 느낌만 준다. 로마나 피렌체, 베니스에 있는 같은 급의 건물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주변도 그렇다. 이렇게 큰 역이라면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는 여러 장소들이나 시설들이 있을 만도 하지만, 역 주변 치고는 너무나 황량하다. 모든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어디로 가버리게 만든다.


이 건물의 내력을 알면 왜 그런지 금방 알 수 있다. 이 건물이 지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80여 년 전이라고 한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쯤에 해당되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 때 만들어진 것이다.


무솔리니. 생긴 것도 좀 그렇지만 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를 독일 편에 서게 하는 바람에 이탈리아를 패전국으로 만든 엄청난 독재자의 상징이다. 이 밀라노 중앙역은 무솔리니가 집권하던 파시즘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니, 당연히 당시의 파시즘적 경향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과장된 규모와 압도적인 인상. 어느 곳 하나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곳이 없는 그런 분위기는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파시즘에 빚진 이탈리아의 현대 문화
하지만 이탈리아의 이런 파시즘적 역사는 이탈리아의 현대 문화의 형성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쳤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의 그렇게 세련되고, 유머러스한 디자인들은 대체로 파시즘이라는 공간 속에서 싹을 틔워 발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파시즘은 현대 이탈리아 문화, 이탈리아 디자인에 드리운 그늘이지만, 부정의 역사로만 치부하고 넘길 수 없는 그런 이유가 있다.


독일도 마찬가지였지만 근대와 현대의 전환기에서 이탈리아의 파시즘은 전통을 파기하는 대신에 기계문명을 선택했고, 사회를 기계장치처럼 일사불란하게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지향했다. 물론 그 기계에 명령어를 내리고 관리하는 것은 파시스트의 몫이었다.


파시즘은 서양의 현대성을 표출하는 하나의 창구였다. 현대와 독재는 20세기 초기에는 이처럼 한 배를 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파시즘의 공간 속에서 성장했던 예술은 현대 기계문명에 거침없는 찬양을 보냈던 ‘미래파’였다. 미래파는 고답적인 전통을 부정하고, 빠르면서 단단한 현대 기계의 속성을 자신들의 작품 세계 특징으로 삼았다. 당시 등장했던 비행기나 기차는 현대 문명을 ‘속도’에 입각해서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강철이나 시멘트로 순식간에 지어버리는 대규모의 건축물들도 한 몫했다.


지금 보면 그런 특징들은 현대 기계문명들이 자아내는 표피적인 특징들이었지만 당시 이탈리아 사회에서는 그런 특징들이 기계의 속성으로 낡은 세상을 바꾸어줄 본질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다소 과격하고 공격적이기는 하지만,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 사회를 손아귀에 넣었던 파시스트들이 보았던 세상도 다르지 않았다. 정치와 문화의 큰 흐름은 공통분모를 가지며 이탈리아의 현대사와 이탈리아 현대 문화의 씨앗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중 문화의 중심지가 바로 밀라노였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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