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디자인의 전반적인 경향은 바우하우스같이 싸고, 빨리, 많이 만들 수 있는 기하학적 형태에서 벗어나 점차 자연스럽고 살아 움직이는 자연을 닮아가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같이 세계적인 건축계의 흐름뿐 아니라, 자동차 같은 산업 디자인까지 전방위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패션계는 어떨까? 우선 사람에게 입혀지는 옷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까? 런던의 신진 디자이너 보라 악수의 옷을 보면 긴 설명 필요 없이 와 닿을 것이다.
터키 출신으로 영국에 이민 한 보라 악수는 2002년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석사 졸업하고 그 다음 해 톱숍 주최의 신인 디자이너상을 수상해 지원을 받게 되었으며 2006년부터 자신의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첫 컬렉션부터 가장 최근 작품까지 그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일관적인 흐름이 있다. 우선 옷과 옷을 입은 사람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어, 마치 외계 생명체처럼 보인다. 근육조직과 혈관이 얽혀있는 생명체의 내장 기관을 보듯 아주 섬세하고 복잡해 보이지만, 무엇보다 아름답다.
이러한 옷을 만들기 위해 그는 독특한 니팅 기법과 여러 소재들을 한 옷 안에 어우러지도록 믹스 매치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여러 조직들이 진짜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보일 수 있도록 투명감을 강조하여 여러 층으로 나뉜다.
니트를 얼기 설기 짜서 구멍 사이사이로 밑에 층의 옷이 드러나도록 한다던가, 투명한 소재를 한 겹 덮어 안에 입은 독특한 무늬와 어우러져 더욱 묘한 인상을 갖게 한다.
따라서 그의 옷은 최소 두 겹, 세 겹 이상을 겹쳐 입어야 되는 중층 구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실루엣 자체는 평범하기 때문에실용적이다.
일상적인 옷에도 충분히 보라 악수의 독특한 니트를 한 겹 더해 입을 수 있으며, 동시에 디자이너 고유의 손길도 유지할 수 있다. 만약 이렇게 복잡한 구조에 전체 형태마저 초현실적이었다면 정말 외계인 같아 보였을 것이다.
최근 소개한 신진 디자이너들이 런던 컬렉션에 서는 디자이너들이었는데, 복잡한 구조의 니트가 강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학교 정책인가 싶을 정도로 오뜨 꾸튀르처럼 굉장한 시간과 공을 들인 작품들이 많다. 이러한 니트 기술 덕에 더욱 유기적인 형태들이 많이 선보여지고 있다.
실제로 건축이나 제품, 공업 디자인에서 유기적 형태가 하나의 트렌드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런 경향은 오뜨 꾸튀르와 기성복 사이의 틈새 시장인 데미 꾸튀르에 적합하다. 데미 꾸튀르란 오뜨 꾸튀르보다는 가격이 낮아 접근성은 좋으면서도 그에 준하는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옷이다.
앞서 소개했던 산드라 백룬트, 앨리스 팔머, 존 로샤 등의 니트가 이러한 데미 꾸튀르 라인에 속하는 의상들이다. 그들로 인해 패션계에도 지각변동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유기적인 디자인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디자인, 그리고 디자인 철학, 이 삼박자가 어우러졌을 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고학수 현디자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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