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디자인의 시작점은 대체로 밀라노로 모아진다. 몇 백년에서 몇 천년을 아로 새기고 있는 유적지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 신경써야 할 전통의 유적지가 없는 그 공백에 이탈리아 현대 디자인들은 마음껏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도심에 우뚝 솟은 대성당
이탈리아야 어딜 가든 중세시대의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그 조그마한 피렌체 안에도 거대한 교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원래 그걸로 많은 부분 먹고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지만, 현대라는 시계가 돌아가고 있는 목전에 4~500년 된 유적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은 그리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전통이 중요하긴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삶이 움직일 수 있는 여유는 적지 않게 필요하다. 유적이 적은 밀라노는 그런 점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서 유리한 점이 있다. 현대 디자인의 중심지 역할을 맡게 된 것은 현대 문명이 돌아갈 수 있는 여유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밀라노는 역시 이탈리아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아무리 유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흔적이 남아있고, 도심 한복판에 거대한 성당이 우뚝 서 있다. 디자인 수도 한복판에 서 있는 성당. 그것만으로도 아주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이 성당 아래로 이탈리아의 현대 디자인이 움직이고 자랐으니, 과연 이탈리아의 현대 디자인이 이 성당으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아무런 영향도 안 받았을 리 없다. 밀라노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이 성당은 사실 건축사에서도 무시못할 비중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며, 이탈리아 디자인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다. 우선 이 건물은 12세기 고딕 스타일의 건물이며, 무려 500여년간 지어진 건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고딕 성당 중에서도 가장 큰 건물로 알려져 있다. 건물을 자세히 보면 웅장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디테일이 매우 정교하고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물을 장식하고 있는 인물상이 거의 700여개에 다다르니 과연 명성이 없을 수가 없다.
대개 이탈리아의 건축물들은 다른 나라의 것에 비해 장식이 좀 덜한 편이고, 주로 비례로 승부를 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건물은 이탈리아 건축물 답지 않게 장식이 풍부하면서도 이탈리아 특유의 비례미가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섬세하고 화려하며 기능적인 이탈리아 현대 디자인들이 이 성당의 완성도 있는 모습으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았을 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옥상 부분의 이미지는 독일이나 프랑스 성당에서나 느낄 수 있는 그런 과도한 웅장함과 종교적 숭고함이 하늘을 찌른다. 밀라노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의 파시즘이 만들어진 데에는 잘 어울릴 이미지다. 끝없이 도열해 있는 성서의 성인들의 모습들은 숭고하기도 하지만 권위적이기도 하다. 그것도 그렇지만 돌덩어리를 깎아서 이런 구조물들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초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장면이다.

아래로 내려와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면 어마어마한 키를 자랑하고 있는 문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청동으로 화려하게 조각된 문의 위용은 엄숙한 것만은 아니다. 성서의 내용들이 정교하게 조각된 모습들로부터 예술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성당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과정은 성당 안의 이미지들과 매우 잘 어울린다. 이 문을 통해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예의 그 웅장하고 숭고한 종교적 세계를 만나게 된다.
높고 넓은 공간과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빛들의 어울림이 고딕적 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 소실점을 향해 강렬한 투시감을 보여주는 실내의 정면은 그 자체로서 감동적이지만 실내의 정교한 부분들의 처리도 큰 감상거리다. 불교나 유교의 강한 훈도를 받지 않았다면 바로 무릎을 꿇었을 정도로 감동적인 공간들이다. 이것을 사람의 온전한 힘으로 만들었다고는 지금 시각에서도 믿어지지 않는다. 신의 가호가 내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처럼 정교하고 아름답고, 거대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로마나 피렌체, 베니스 같은 도시에 비해 밀라노는 볼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성당 하나로 자신의 선입견을 조절할 만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 보다 이런 성당 아래로 이탈리아의 현대 디자인들이 분주하게 20세기를 수놓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밀라노 대성당 아래에서 아르마니나 에토레 쏘사스 같은 디자이너들이 현대 디자인들을 만들었다는 것, 아니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 그것을 디자인 분야에서는 빼고 보는 것 같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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