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과 동양이 합쳐진 그의 이국적인 용모만큼이나 이색적인 모양의 옷을 선보이는 존 로샤. 동·서양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있는 형태는 날고 기는 신인들이 득실대는 런던 컬렉션에서도 그 육중한 무게감이 빛을 발하고 있다.
사실 그는 다양한 소재를 한 벌의 옷안에 녹여내는 것으로 더 알려져 있다. 졸업 컬렉션에서 아이리쉬 린넨에 매료되어 런던으로 이주했다는 그에게 천 고유의 독특한 질감이 그의 디자인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상상할 수 있다.
그의 컬렉션을 구성하는 옷들은 크게 세 가지 특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은 다양한 소재를 섞어 질감을 표현하는데 탁월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는 패턴, 즉 무늬가 들어있는 천을 믹스 매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개발하는 표면의 독특한 질감이 느껴지는 천들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기법으로 개발된 소재는 그 특유의 양감과 무게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다양한 소재를 쓸 때도 대비의 법칙은 적용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꼬인 털실들이 망토 전체를 채워 무게감을 주는 대신 하의는 맨 다리라거나, 안감을 대지 않은 날것의 모피로 된 코트와 시폰 원피스의 대비, 아무 무늬 없는 순백의 면 셔츠와 촘촘이 박힌 스톤들로 장식 되어 갑옷처럼 단단해 보이는 조끼 등 그 다양한 천들의 어울림의 밑바탕에는 대비의 법칙이 숨어 있다.
다양한 소재를 쓰는 만큼, 그는 니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데, 사진에 보이는 까만 원피스도 니트 소재가 아니었다면 저렇게 거미줄로 짠 듯한 원피스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자세히 보면 이 원피스 뭔가 좀 이상하다. 실제 모델의 엉덩이보다 살짝 부풀려져 풍만한 엉덩이 라인을 만들고 있다.
니트의 신축성 있는 조직을 이용하여 과장 된 X라인 실루엣을 선보인 것이다. 마치 크리스찬 디올의 뉴룩처럼. 디올의 뉴룩은 가는 허리와 대비되는 풍성한 엉덩이를 위해 그 구조를 받칠 수 있는 일종의 엉덩이 볼륨 보형물을 함께 착용했어야 했다. 니트로 된 존 로샤의 원피스는 니트만의 힘으로 실루엣이 유지되는 듯 보인다.
이렇듯 소재 실험은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데도 영감을 준다. 그는 천 소재의 대비를 위해 두터운 코트 위에 가볍고 바삭한 소재로 된 일종의 앞치마 같은 구조를 덧대어 기존의 코트 말고도 다른 실루엣으로 옷을 입을 수 있도록 했다. 허리끈에 층층으로 러플을 덧대어 만든 반쪽만 가려지는 치마는 겨울철 매번 같은 코트만 입어야 되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존 로샤가 소재를 실험할 때 사용하는 방법은 반복적인 기법으로 천을 만들어 간다는 점이다. 특히 천 위에 선으로 된 재료, 가죽 끈이나 리본, 털실 등을 올려서 소재를 개발하면 동세가 생기면서 입체감이 느껴지는 율동감이 생긴다. 선재의 율동감은 또한 옷이 더욱 역동적으로 보이는 힘을 준다. 이런 효과는 절대 옷의 무늬로는 나타낼 수 없다.
건축적, 또는 구조적이라 표현되는 옷들은 대부분 소재에 대한 이야기는 결여되기 마련이다. 이 디자이너는 신 소재를 개발하고, 새로운 구조의 옷을 만드는데 영감을 주고 있다.
고학수 현디자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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