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분야에서도 패션은 디자이너들의 개성이 대단히 두드러지는 분야이다. 웬만큼 뚜렷한 능력이 없으면 남아있기 힘들다는 뜻이다.
아울러 자기의 개성으로 세계를 주름잡는 기라성같은 디자이너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피 튀기는 현장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 스페인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디자이너가 바로 존 갈리아노다.

개성에 묻힌 문화적 역량
프로덕트 분야에서 하이메 아욘이 스페인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면 패션 분야에서는 존 갈리아노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모두 일당백의 기세로 세계에서도 기죽지 않고 스페인의 존재감을 우습게 보이지 않게 하고 있는 최고의 자리에 있다.
특히 존 갈리아노는 패션이라는 밀림 속에서 온갖 맹수들을 물리치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와 있는 인정받는 디자이너이다. 그것도 개성을 최고로 치는 패션 분야에서 자기의 독특한 개성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장간에 식칼이 없다고, 정작 패션 디자이너들은 옷을 그리 챙겨 입지 못한다. 대체로 패션 쇼가 끝날 즈음에 편한 옷을 입은 채, 무대 뒤의 노고를 어깨 위에 그대로 업고는 하객들에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나서는 홀홀히 들어가는 게 디자이너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존 갈리아노는 좀 달랐다. 작은 키에 엽기적으로 생긴 모습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매 시즌 쇼가 끝난 뒤에 보여주는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독특한 이벤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즐거운 볼거리였다.
멋있거나 세련된 모습보다는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이벤트적 등장은 정말 이 디자이너가 상상할 수 없는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다시한번 느끼게 하였다.
그의 이런 쇼가 단지 이벤트성이거나 하찮은 자기 과시가 아니라는 것은 그의 패션에 나타난 기막힌 면모들을 통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바로 그런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약간은 오버된 모습들이 납득할 만한 예술적 퍼포먼스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의 패션을 보면 그의 강렬한 개성뿐 아니라 스페인 태생이 가질 수 있는 매우 독특한 문화적 혼합을 동시에 발견하게 된다.

패션 용어로 보자면 ‘믹스 매치’ 말로 대충 넘어가지만 사실 어울리지 않는 것을 어울리게 한다는 것은 미학적으로도 대단히 지적이고,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문화적으로 준비가 안 되면 좀 구사하기가 어려운 접근이다.
속옷 같은 원피스에 가죽 코트를 매치한 갈리아노의 패션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을 매우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게 만드는 그의 솜씨를 잘 살펴볼 수 있다.
겉으로 보면 개성으로 충만한 것으로만 보기 쉽지만 충돌되는 이미지들을 충돌시키려는 그의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스페인 문화의 영향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색이나 무늬 등에 있어서도 존 갈리아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스페인적 성향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짙은 오렌지에 연한 보라색의 매치, 단색에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고전적 분위기의 색상의 아름다운 대비, 그리고 이국적 분위기에 대비가 심한 색의 매치는 원리적으로 스페인의 조형적 성향을 깊게 머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풀거리는 고전주의적 패션 이미지와 번쩍이는 이국적인 무늬의 조합은 이탈리아나 프랑스적인 분위기와는 좀 계통이 다르다. 아라비아 문화와 남미의 이미지가 융합된 스페인적 분위기가 잘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입고 있는 일상 옷들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처럼 평범한 일상적인 분위기를 보면 존 갈리아노의 패션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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