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메 아욘과 존 갈리아노. 가뭄에 콩나듯 한 스페인계 디자이너들이지만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은 어느 나라 디자이너에 뒤지지 않는다.
하나는 세계 프로덕트 디자인계의 첨단을 걷고 있고, 또 하나는 세계 패션 디자인계에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 있다. 이 둘 만으로도 스페인은 웬만한 디자인 강국으로 올라서기에 충분하다.

디자인이라기엔 너무나 자유로운
하이메 아욘. 조용하던 스페인 프로덕트 디자인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유망주였다. 하지만 어느새 유망주 라벨을 벗어던지고 지금은 어엿한 중견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체로 무명의 디자이너가 세계적인 레벨에서 활약하게 될 때는 무언가 커다란 업적(?)이 있어야 된다. 앞 시대의 디자인 흐름을 한 방에 옛 것으로 만드는, 토마스 S. 쿤의 말을 빌리자면 단박에 페러다임을 바꾸어 새로운 판을 만드는 그런 혁신적인 디자인을 내 놓아야 한다. 하이메 아욘은 역사에 등장하는 천재적인 디자이너들의 행적을 그대로 따라갔다. 순수미술과 디자인에 걸쳐 있는, 그러면서도 보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기존의 디자인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거대한 피노키오 모양을 중심에 놓은 설치미술 같은 작업을 통해 하이메 아욘은 디자인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냥 보기에는 순수미술작품 같지만 이것은 타일 회사의 상품 전시장이었다. 타일이라는 산업 제품을 이처럼 고급스럽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을까?
깨알 같은 글씨의 상품 설명서보다도 타일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훨씬 더 효과적으로 한 눈에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구성은 순수미술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하나씩 따져 보면 결격 사유가 없는 디자인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러면서도 순수미술의 어떤 격조와 신비감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이것은 흡사 가우디의 건축물들에서 볼 수 있었던 실용성과 작품성의 초현실적 인상을 연상시킨다. 캐릭터같은 조형물이 세워진 벤치도 쓰임새 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강하게 우러나는 디자인이다.

사실 이런 추상적인 형태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재미를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검은 색과 둥근 형태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조형 이미지와 녹색 소파의 어울림도 무척 초현실적이다. 인상은 다르지만 서로 다른 형태들이 부딪히면서 우러나오는 초현실적 느낌은 가우디의 건축물이나 역시 스페인 출신인 달리의 초현실주의 회화가 주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비슷한 것 같지만, 이탈리아 출신 디자이너들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유머러스한 활력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 재미있지만 신비로운 초현실적 표현. 서유럽과 아랍 문화가 융합된 스페인의 문화적 특징이 현대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단순히 플라스틱으로만 된 캔디 그릇이지만 둥그스름한 모양과 번쩍거리는 투명한 질감의 대비가 매우 이국적인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스페인의 감수성이 형태의 밑바닥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하이메 아욘의 의자나 테이블 세트, 샹들리에들이 함께 모여 있는 전시장의 모습들도 역시 어울리지 않은 것들이 어울려서 매우 독특한 인상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무채색 톤은 강렬하게 부딪히는 형태들의 이미지들을 어느 정도 완화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것을 감안하고 보면 이 장면에서는 오래된 것과 새 것, 미래적인 것과 고전적인 것, 이국적인 것들과 익숙한 것들, 이 모든 것들이 종으로 횡으로 부딪히면서 아름답게 어울리고 있다.
스페인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모습들이다. 종종 순수미술과 혼돈을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눈과 마음에는 그 동안 느낄 수 없었던 독특한 인상을 강렬하게 안겨준다.
이 한 명의 디자이너를 통해 스페인의 모든 전통과 문화는 자연스럽게 현대적인 모습으로 재생하고 있으며, 나아가 세계 디자인 계는 새로운 발전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위축되었던 스페인 디자인의 존재감은 이로써 천군만마를 얻게 되었다. 프로덕트 디자인뿐만 아니라 패션 디자인에서도 출중한 디자이너가 포진하고 있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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