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디자인에 대한 정의는 한 둘이 아니지만, 사람의 생활방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디자인이라면 그저 특정한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기만 하는 것에 비해서 무언가 대단한 점을 더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된 전통이나 관습에 그것이 변화를 초래한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의 사물의 수준을 넘어서는 게 아닐까 싶다.
에바솔로. 외국 영화배우 이름 같지만 덴마크의 주방용품 브랜드의 이름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브랜드는 디자인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모양도 모양이거니와 주방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들을 그저 노동이 아니라 의미있는 행위로 만들어주는 뛰어난 점 때문에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수많은 명작들이 있지만 특히 이 독특한 모양과 기능의 물건은 우리의 일상생활 아주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와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우선 모양을 한 번 세심하게 살펴보자. 반쯤 둥근 모양은 한 손에 착 감겨들어오는 편안한 디자인이다. 그리고 직선이 하나도 없는 모양새, 차가운 스테인레스 스틸의 질감과 검은색의 플라스틱 질감이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 모양이 이미 하나의 조각품에 모자람이 없을 만큼 훌륭하다. 하지만 이 물건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는 그냥 모양만 봐서는 알기 어렵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디자인은 사과의 속을 파내는 도구이다. 이 도구를 사용하면 사과 속을 원기둥 모양으로 빼내고 나서 편안하게 사과를 베어 먹을 수 있게 된다. 단지 편리한 도구의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사과라 하면 과도로 껍질을 부드럽게 정성들여 깎아내고 먹는 것이 동서고금의 일치된 관행이 아닌가. 하지만 이 도구는 그런 인류의 오래된 습관을 단박에 전복해 버린다.
사과의 꼭지 부분에 이 도구의 끝 부분을 깊게 눌러 돌려 넣으면 사과의 중심 부분이 원기둥 모양으로 잘라진다. 물론 각도나 힘 조절을 잘 해야 한다. 좀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아무튼 그렇게 사과의 가운데 부분을 원기둥 모양으로 분리해서 쏙 빼내면 사과의 남은 부분은 마치 예술작품 혹은 기하학적 조형물 같은 포스를 내뿜게 된다.
둥들둥글하면서 울퉁불퉁 하기까지 한 과일에 정확한 원기둥 모양이 쏙 빠진 그 느낌은 단지 사과를 그냥 안심하고 먹으면 된다라는 점 이전에 매우 복잡하고 독특한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그렇게 감상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사과의 씨와 심지는 깨끗한 원기둥 모양 안으로 들어가 깔끔하게 제거 되었으니 그 다음은 안심하고 맛있는 사과를 한껏 베어 먹으면서 그 아름다운 맛을 감상하면 된다. 그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지만 이 도구가 가져다주는 새로운 사과 먹기의 맛은 단지 혀의 감각의 수준을 넘어선다.
사과를 이렇게 먹을 수도 있구나! 맛도 맛이지만 기존의 과도에서 느낄 수 없는 깔끔하고도 현대적(?)인 사용방법을 만끽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삶의 즐거움이란 이런 데에서 더 질감을 얻고 확대되는 것이 아닐까.
이 도구는 단지 특이하고 예쁜 디자인이 아니라 사과를 대하는 사람들의 오래된 습관이나 인식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주면서 나아가 우리에게 색다른 재미까지도 준다. 단순하지만 우아한 모양새가 아름답기까지 하니 모자랄 것이 없는 디자인이 아닐 수 없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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