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이라고 하면 다른 분야와는 달리 좀 첨단적이고 지적인 문제를 제기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들인 헤르조크와 드묄론의 비트라 뮤지엄은 그런 범주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소박하지 않은가 싶다.
‘비트라’는 독일의 유명한 가구 브랜드이다. 세계 유수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면서 수많은 명작들을 생산하고 있는 손꼽히는 명가이다. 가구나 소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지만 비트라라는 이름은 세계 건축사에서도 명망이 남다르다. 프랭크 게리나 안도 타다오, 자하 하디드 등 세계 건축계를 이끄는 사람들과 역사에 남을 굵직한 건축 작업들을 많이 해왔기 때문이다.
자하 하디드의 비트라 소방서나 프랭크 게리의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안도 타다오의 비트라 사옥 건축 등은 독일과 스위스 접경 지대에 있는 비트라 공장 주변에 모두 자리 잡고 있다. 에르조크와 드묄론의 뮤지엄 건물은 가장 최근에 신축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건축은 다른 건축가들의 작품들과는 좀 다르게 다가온다.
한껏 멋을 부릴 만도 하고, 한껏 지적 풍자를 구사할만도 한데 비트라 뮤지엄은 멀리서 보면, 여러 채의 집들이 무질서하게 쌓여있어 마치 태풍 피해를 입은 동네처럼 보인다. 풍자적이긴 한데, 집의 가장 기본적인 모양을 한 수수한 모습이 전혀 무겁지 않게 다가온다. 오히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들어갔던 동네에 온 것 같은 인상을 느끼게 하고 있다.
겉에서 볼 때는 얼기설기 쌓인 집들이 무질서하고 단절적으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모든 건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밖에서 본 것과는 달리 안의 전시장들은 매우 의도적으로, 철저하게 계산되어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부의 전시장에 진열된 것들은 모두 세계 디자인 역사에 길이 남을 명품 중에 명품들이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쇼핑할 수도 있다. 가격은 매우 부담스럽다. 하지만 가지지 못한다고 해서 만지지도 못하고 앉아보지도 못하지는 않는다. 이 곳 안에서 만큼은 얼마든지 멋진 가구와 소품들이 놓여있는 실내를 내 것처럼 씨뮬레이션 해 볼 수 있다.
전혀 부담없이. 그렇게 만든 가장 중요한 원인이 바로 이 건물의 수수한 외모가 아닐까 싶다. 건물의 실루엣에서 느껴지는 화려하지도 않고, 평범한 인상은 여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전혀 있는 척(?)을 하지 않는다. 그저 편한 집처럼 구경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건물의 외관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건물이 정말로 수더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외모와 달리 계획적으로 디자인된 실내도 그렇지만 집 모양의 전면을 유리창으로 한 것에서 우리는 큰 감동을 받게 된다. 밖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건물의 안으로 들어가서 맞배 지붕이 베풀어진 듯한 집 모양의 실루엣에 서서 바깥을 바라 보면 커다란 산과 짙푸른 녹음이 집안 한 가운데로 들어온다.
한옥이 아닌 데서 이처럼 바깥 경관을 맛깔나게 감상하기는 어려운데 여기서는 가능하다. 서양 건축가들인데도 동아시아의 건축가들의 설계작업실을 여러 차례 왔다 갔다 한 것처럼 느껴진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건축물들로 우리들의 허를 찌르기 예사인 건축가이지만 역시 이번에도 한 건 단단히 올리고 있다.
진리는 쉬운 곳에 있다던가… 간단하게 생긴 집 모양 하나만 갖고도 이렇게 절실한 감동을 안겨주다니 역시 거장은 거장이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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