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4대 컬렉션에서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패션계. 이러한 패션계를 쉽게 파악하는 방법은 비슷한 계열의 디자인론을 가진 디자이너들로 묶어 살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많은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천재형인 존 갈리아노와 마크 제이콥스, 자국의 전통을 재해석하여 현대화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이세이 미야케, 패션을 개념 예술로 선보이는 꼼 데 갸르송과 마르틴 마르지엘라 등처럼 말이다.
오늘 소개할 토드 린은 얼핏 릭 오웬스와 비슷한 부류다. 아직은 무슨 형이라고 딱 꼬집어 설명하기 어렵지만, 여러 가지 부분이 닮았다. 가죽 소재를 잘 사용한다든지, 절제 된 색의 사용이라든지, 수직적인 실루엣, 아메리카 대륙 출신이면서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점들이 그렇다.
롤랑 무레의 오른손으로 불렸던 토드 린은 캐나다 출신으로 2007년부터 런던에서 자신의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고객 중에는 U2, 마릴린 맨슨, 롤링 스톤스 등 세계적인 락 그룹들이 있다. 이런 고객 리스트는 그의 패션이 지향하는 바를 조금이나마 알려주는 듯 하다. 한 때 회자되었던 락 시크라는 표현도 있지만, 그의 패션을 좀 더 해부해보면 약간은 다른 범주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11년 F/W 컬렉션은 특히 중세의 고딕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중세하면 종교와 봉건제도로 인간을 억누르던 암흑기, 성직자와 기사 계급,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솟은 고딕 성당 등이 연상된다.
이러한 점들은 옷에서 어떻게 표현될까? 우선 실루엣이 고딕시대의 대성당들처럼 하늘로 올라갈 듯 길고 가는 형태다. 모피로 얼굴을 반쯤 가리거나 재킷의 칼라와 라펠을 크게 확대하여 높이 세운 의상들이 이번 컬렉션의 큰 특징들이었다.
대부분 로코코 시대를 환기시키는 의상들이 가슴과 허리, 엉덩이의 곡선을 과장하는데 비해, 고딕 시대를 연상시키는 의상들은 여성의 몸도 마치 남성의 토르소처럼 직사각형으로 표현된다.
실제로 중세시대에는 원죄설로 인해 인체에 대한 굴욕감과 수치심이 극에 달했으며, 이로 인해 관념화 된 마른 형을 이상적으로 여기고 육체미의 형상을 철저히 배제시켰다. 온 몸을 감싸는 직선적인 형태의 토드 린의 의상을 보면서 고딕 시대를 연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실루엣과 구조뿐 아니라 색도 수직적인 인상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그는 컬렉션 전반적으로 색을 제한해서 쓰는 특징이 있다. 보통 모노톤에 포인트 컬러 한 두 가지를 더 사용하여 한 컬렉션이 많아야 다섯 가지 색을 넘지 않는다.
이것을 단순히 모노톤을 사용한다거나, 블랙 앤 화이트로 도시적인 감성을 드러낸다고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그의 색 사용은 실루엣과 더불어 수직적 인상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옷 한 벌이 대부분 한 가지 색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인체에 사선도 잘 쓴다. 수직, 수평, 대칭적으로 이루어지는 인체의 구조상 비대칭적인 사선이 들어가면 집중되는 효과가 크다.
고학수 현디자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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