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울란바토르의 ‘서울 거리’에는 한국에서 수입한 버스나 택시, 오토바이들이 달리고 있다. 서울 거리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몽골에는 1000여 개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활동 중이고, 몽골의 2만여 젊은이들은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다. 그 나라를 여행하면서 필자는 ‘몽골과 한국의 어제와 오늘’을 생각해 보았다.
몽골은 한반도의 7배에 달하는 넓은 국토에 인구는 300만 명(2008년)인 나라다. 세계에서 8번째로 자원이 풍부하고 석유까지 생산된다. 게다가 말, 양, 염소, 소 등 인구 수보다 더 많아 동물 가죽, 울 섬유, 그리고 육류까지 풍부한 생산량을 자랑한다. 그러나 몽골의 GDP는 2227 달러(2010년)에 불과하다.
몽골인과 한국인은 한 핏줄에서 비롯됐다고 할만한 근거가 많다. 몽골과 한국의 신생아 90%에서 발견되는 파란 몽골 반점이 그렇고, 외모나 생활 방식, 언어 등에서 너무도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 몽골과 우리의 교류는 5세기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중원을 평정한 몽골은 1231년부터 7차례에 걸친 침략으로 고려에게 굴욕 외교의 수모를 겪게도 했다. 이로부터 몽골의 고려 지배는 80여 년 간이나 계속되었다.
더구나 칭기스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은 자기의 딸과, 인질로 끌고 간 고려 24대 원종의 태자 심을 결혼시켰다. 이를 시작으로 고려의 세자와 원나라 공주와의 결혼은 31대 공민왕까지 이어졌다. 원나라의 이 같은 결혼 정책에는 자기 나름대로는 ‘고려에 대한 부러움과 우대’도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럽게 원의 공주들이 가지고 들어온 몽골의 문화는 고려의 왕실 깊숙이 자리 잡았다.
처음 원에 끌려갔던 심은 원에서 고려에 돌아올 때 몽골의 복장인 호복(胡服)과 머리 스타일인 변발(辮髮)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원종의 뒤를 이어 왕위(충렬왕)에 오른 후 몽골의 변발(辮髮)과 호복(胡服)을 하도록 명을 내렸다. 이 ‘몽골 풍’은 공민왕이 1352년에 폐지하였으니 무려 77년이나 계속되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신부의 족두리, 볼에 찍는 연지 등의 근원이 몽골이라는 문헌들이 있고, 전통 두루마기의 형성 과정에 몽골의 포(袍)가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도 있다. ‘몽골풍’인 것이다. 고려에 ‘몽골풍’이 있었다면 원에는 ‘고려양(高麗樣)’이 크게 유행했던 것 같다. 특히 고려 말기인 1333년 기자오의 딸이 공녀로 원나라에 가 궁녀가 되었다. 그녀는 1338년 왕자를 낳고 그 이듬해에 제2 황후로 책봉되었다. 당시 거의 모든 원의 관료들이 고려 미인 얻기를 소원하고 있었다. 기 황후는 세력 확보를 위해 고려의 미인들을 권신들과 맺어 주었다. 궁녀 대부분이 고려 여인이 되었고 사방에 고려의 복식이 넘쳤다고 한다. 그러나 그 것이 어떤 옷이었는지에 대한 자료가 확실치 않다. ‘몽골풍’도 ‘고려양’도 점차적으로 더욱 연구되고 밝혀져야 하리라 본다.
몽골과의 문화적 영향이 아직까지 그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앞으로는 몽골과 어떤 역사를 더 엮어 나갈지 주목된다. 몽골은 무한한 가능성의 땅이기 때문이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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