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머금은 듯 야스히로 스즈키의 채소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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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놀라게 하는 디자인 27

2011-10-07 오후 3:23:53


격세지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디자인에서는 쓰임새가 가장 중요하고, 그런 쓰임새를 형태적으로 강조하느라 모두가 앞 다투어 기계적인 형태를 추구했었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에서는 원기둥이나 육면체 등의 기하학적 형태가 아닌 것은 끼워주지도 않았었다. 그동안 기하학적 형태는 현대 디자인의 세련됨과 사회적 의무를 표시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었다. 여기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은 공예나 순수미술에 가까운 것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어느새 기계로 깎을 수 없는 이런 유기적인 형태들이 공예의 의심을 벗어던지고 당당한 디자인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그동안 기능성을 의심받는 디자인들이 디자인의 주류에서 좀 삐딱한 대접을 받았던 것은 디자이너의 개성이 대책 없이 표출되는 것이 기능과 생산을 고려해야 하는 주류 디자인에 비해 너무 철없이 여겨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기능이나 생산이라는 정확한 지표를 버리고 내 마음대로라는 무지막지한(?) 생각들로 디자인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나 당위성을 전혀 확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기능 이외에는 디자인에서 추구할 가치체계를 전혀 확보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기능만을 생각하는 디자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기능 이외에 추구할 가치를 만들지 못했던 측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기능주의라는 무소불위의 가치를 대체할 만한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디자인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 채소 그릇도 그런 것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그저 디자이너의 막연한 감각을 방사한 디자인들에 비해서 이 디자인이 기능주의적 디자인에 모자라지 않은 힘으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우리들의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달려드는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작가의 우월적 창의력이 아니라 우리를 감동시키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양배추 잎 모양처럼 생긴 그릇이라는 게 우리의 마음을 잔잔하게 진동시킨다. 흔히 보는 양배추 모양을 이 디자이너는 그릇으로 만들 생각을 하였다. 아주 일상적인 주제로부터 시작했지만 우리의 일상을 아주 창조적으로 보게 만든다. 진정한 작가정신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면적이 크고 넓으면서도 지적놀음이나 자아도취적 현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보는 디자이너의 눈이 우리의 눈을 새롭게 세척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예술의 대중성을 급하게 주장하지 않지만 대중성, 디자인, 작가 등등의 개념들이 여러 개가 아닌 하나로 다가온다.


그것 뿐 만이 아니다. 디자인에서 자연을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처럼 디자인 자체가 어떤 산업적 물성을 탈색하고 하나의 자연으로 환원되는 결과를 내놓는 경우는 참으로 볼 수 없다. 그린 디자인을 강조하고, 이벤트화 하면서 오히려 디자인의 자연성을 훼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이 디자인에서는 노골적인 그린 디자인이나 환경 디자인의 슬로건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더 정확하게 그러한 것들을 전해준다.


이 그릇을 쓰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강렬하게 자연을 경험하게 될 것인가. 체험으로 자연을 습득하고 그러한 결과들은 정확하게 산업적 생산과정 안에서 이루어진다.


의도적인 수사학이나 미학적 허위의식들일 얼마나 무력하고 겉치레인지 이 디자인을 통해 우리는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노자 도덕경을 해설한 ‘왕필’이 도를 설파한 노자보다도 공자를 더 위로 여긴 것이 연상된다. 공자는 도를 도라고 하지 않고 도를 설파했기 때문에 공자가 한 수 더 위라고 했지 않았나 싶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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