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의 긴 세월 동안 철권통치를 해온 카다피의 패션은 통치 기간 동안 보여준 악행과 기행만큼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주변 시각을 의식하지 않는 듯 한 그의 튀는 패션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르다. 아주 이따금 긍정적으로 평가가 있기도 하지만, ‘팔색조’ ‘카다피 패션엔 광기가’, ‘세계에서 가장 뻔뻔한 옷차림’ 등 대부분 부정적 평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패션에 대한 그의 관심은 매우 컸고 패션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도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3년간 카다피의 전담 간호사였던 우크라이나 출신 옥사나 발린스카야(24)는 “카다피에게는 의상 강박증이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었고,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방으로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흰색 옷으로 갈아입고 돌아오기도 했다”고 했다. 발린스카야의 증언이나 세계 언론들의 혹평이 아니어도 그의 패션은 참으로 요란하였다. 그러나 그가 패션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이미지는 분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집권 초기부터 미국 등 서방을 향해 호전적인 발언을 쏟아내던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그는 강인한 이미지의 군복 차림을 고집했다. 나라를 구한 혁명 전사임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둘째는 2000년대 이후 풍성한 베두인족의 전통 의상으로, 마치 중세 왕이나 황제가 된듯한 차림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그리고 때와 장소에 맞춰 변신을 거듭하며 독재자의 카리스마를 극대화 시켜갔다. 호화로운 비단에 황제의 색인 퍼플과 화려한 색체들의 의상을 비롯해, 심지어 왕관과 황금 지휘봉까지 들고 나와 그의 권력과 부를 마음껏 뽐냈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그랬던 것처럼 패션에서도 점점 오만방자해졌다.
세 번째는 정치적 감정을 의상에 적나라하게 나타냈다. 카다피는 과거 리비아를 20년간 식민 통치한 이탈리아를 2009년 처음 방문했을 때 리비아 독립 운동 지도자인 우마르 무크타르와 전사들 사진을 오른쪽 가슴에 오려 붙이고 나타났었다. 이탈리아군에 의해 처형된 그들의 사진을 통해 과거의 식민 통치에 대한 저항감을 직설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또 자유의 전사들 사진이나 아프리카의 지도를 몸에 부착하고 나타나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패션을 통한 이미지 전달에는 일견 성공한 듯 했지만 그의 노력과 달리 그에게 되돌아 온 것은 온갖 야유와 악평, 그리고 멸시, 더 나아가 미움을 부르는 역할까지 한 것 같다.
옷이란 ‘때(time)’와 ‘장소(place)’ 그리고 ‘경우(occasion)’에 따라 입어야 한다고 말한다. 카다피도 팔색조처럼 때와 장소에 따른 변신은 잘 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은 무시하였던 것이다. 경우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포함한다. 카다피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독재자가 되면서 과대 망상에 빠져, 뻔뻔하고 오만방자해져 ‘경우(occasion)’는 무시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였던 것 같다. 포장이 아름답다고 안의 물건이 좋아질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속에서부터 아름다워져야 한다는 교훈을 카다피의 패션을 통해 느끼게 된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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