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체로 창조력이 떨어지고 그저 그런 디자인들을 내놓으면서 서서히 은퇴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 디자이너들의 일생이다. 하지만 디자인을 하면할수록, 쇼킹한 디자인을 내놓으면 내놓을수록, 더 예측할 수 없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천재적 작가들이 있다. 론 아라드. 세계 3대 디자이너라고 일컬어지기도 하지만 이런 도식적이고 자의적인 표현이 없더라도 그의 뛰어남은 그 자체로 발광한다.
피짜 코브라라는 조명을 보면 그의 천재성, 거장으로서의 여유와 깊이가 잘 느껴진다. LED램프의 등장으로 조명분야에서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대체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디자이너들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꽤 오랫동안 고심을 하고 새로운 실험을 많이 하게 된다. 가볍고, 열이 안 나고, 전기가 많이 소비되지 않으면서도 밝다는 LED램프의 특징을 디자인적으로 가장 잘 표출하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숙제가 있을 때 거장들의 솜씨들이 힘을 발휘하게 된다. 론 아라드는 그런 램프의 특징들을 이처럼 희한하게 생긴 디자인으로 해석해 냈다.
구조는 간단하다. 모기향처럼 점점 안쪽으로 말아들어가는 파이프 모양인데, 직각으로 관절을 두어서 관절부위가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했다. 이게 전부다. 하지만 파이프가 여러 번 말아 들어감에 따라 관절부위가 대단히 많아졌다. 그렇기 때문에 램프의 모양이 관절의 회전에 따라 매우 다이나믹하게 변신하게 된다. 간단한 구조이지만 마치 트랜스포머의 로봇보다도 훨씬 다양한 모습을 만들어가게 된 것이다. 구조적으로는 간단하지만 가능한 모양은 수없이 많다. 마치 설치미술품과 같은 창조력이 충만하면서도 아름다운 형태가 아닐 수 없다.
보기에는 쉽지만 이렇게 간단한 구조에 변화무쌍한 변화를 실어낸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형태와 구조에 대한 깊은 고민과 훈련이 쌓이지 않으면 만들기 어려운 조형물이다. 그대로 확대해서 설치미술로 만들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런데 이런 순수조형적 질을 갖춘 형태가 조명 램프라니 더욱 놀라운 일이다.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면서도 조형예술을 울고 가게 할 만큼의 개념이 들어있으니 이런 디자인에서 디자인과 순수미술의 차이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사실 론 아라드는 지금까지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있는 듯한 작품들을 해왔었다. 그의 디자인 행보들을 전체적으로 보면 이런 접근은 그리 생소한 것도 아니고, 이 정도의 질은 항상 유지해온 거장이었기 때문에 그리 생소하거나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만 어떻게 매번 이처럼 창조적이면서도 일관된 실험적 결과물들을 평생에 거쳐서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의문이면서도 경외롭기까지 하다.
아무튼 순수미술이니 디자인이니 하는 구분이나, 그 뒤에 깔릴 수 있는 미학적 견해들을 제쳐두고라도 이 아름다운 램프는 그 존재자체만 보더라도 너무나 아름답다. 금속성의 차가우면서도 세련된 이미지의 재질과 둥근 단면을 가진 원기둥 모양의 부드러운 이미지들이 묘한 대비를 이루면서 우리의 눈에 띄지 않게 자극해 들어온다. 그리고 둥글게 말려 들어가는 원기둥의 동세는 가만히 서있는 형태에 살아 움직이는 힘을 더해주고 있다. 게다가 각각의 관절들을 구부려서 다이나믹한 형태로 만들었을 때 그런 동세는 형태의 구조적 아름다움과 더불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더욱 폭발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디자인을 코브라라고 지은 것은 참으로 탁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름을 짓는 데에까지 거장스러운 면모들을 한껏 발하고 있다.
디자인에서 쓸모란 무엇일까? 하나의 간단한 형태에 이처럼 많은 재미를 드리우는 그의 솜씨에서 디자인의 의무라 할 수 있는 기능에 대해 재차 생각해보게 된다.
최경원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