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라는 잣대로 스페인을 잰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다. 현대적인 이미지를 가진 디자인을 두터운 시간이 눌어붙고, 외계인이 만들었음직한 이국적인 스페인 문화와 연결시킨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디자인 이전에 스페인!
스페인에 디자인이란 잣대를 들이 댄다는 것은 좀 어색하다. 제 아무리 최첨단 디자인이라고 하더라도 스페인 거리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고색창연한 건물들과 물건들의 혁신적인 모양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를 주름잡는 디자이너들이나 디자인 브랜드들이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스페인이다. 한때 대양을 휘어잡으며 세계를 호령하긴 했지만 1588년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하면서 스페인은 패권을 잃고 영국과 프랑스의 번영을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유럽의 번영기에 스페인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었으며, 특히 세계 대전기에는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
게다가 1975년까지 프랑코의 독재치하에 전근대적인 퇴행적 체험까지 하다 보니, 일반적으로 유럽이 지나왔던 발전의 경로들을 부실하게 지나게 되었다. 무딘 산업혁명의 역사는 그런 스페인의 특이함을 잘 설명해준다 하겠다.
그러다 보니 스페인은 현대적인 디자인의 흐름에서는 아주 많이 단절되어 있었고, 수공업적 전통이든 산업 디자인의 전통이든 그리 뚜렷한 모습을 그리기가 어렵다. 순수 미술에서는 피카소와 같은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했지만 디자인 분야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족적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 같다. 이 정도라면 스페인에서 디자인의 흔적을 더듬기는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에서 스페인을 건너뛸 수 없는 것은 스페인의 혁신적인 전통이 오늘날 첨단 디자인도 넘기 어려운 새로움과 혁신적인 면모들을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한 가운데에 있는 인물이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 ‘가우디’이다..

스페인의 아취, 가우디
디자인이라는 범주에 안 들어도 별 문제 없을 것이다. ‘가우디’는 그 이름만으로도 서양 문화사에 걸쭉한 하나의 장르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가우디가 최초로 의뢰받은 개인주택 까사 비센스는 이국적인 외모만으로도 충격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마치 아직도 이슬람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이국적인 모습은 이 건축가의 건축사적 위치를 가늠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현대식 주택이긴 하지만 그 속에 녹아들어있는 이슬람적 이미지는 아무리 오래되더라도 참신한 충격을 주고도 남을 정도이다. 가까이서 보면 벽돌의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인 느낌과 조각 작품같은 장식이 그냥 개인주택으로 보기에는 어쩐지 아까운 느낌이 들게 만든다.
좀 더 가까이서 하나하나 따져 보면 전체의 이국적인 인상과 부분의 정교하고도 특이한 모양새들이 혀를 내두르게 하고 있다. 이 앞에서는 디자인이나 공예나 건축과 같은 구분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흔히들 이런 가우디의 면모를 두고 천재라는 찬사만을 외치기 쉽지만, 사실 아무리 천재라 한들 자기가 경험한 것을 초월하는 외계인적 천재는 불가능하다. 아울러 가우디의 이런 천재성의 젖줄을 재대로 확인하지 않는다면 스페인의 디자인적 흔적을 더듬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이국적’이라는 찬사 아닌 찬사로 치장되는 점에 있어서는 스페인 문화가 좀 억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스페인의 디자인, 나아가 스페인 문화의 천재적 성향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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