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3대 산업 디자이너라고 일컬어지는 론 아라드는 항상 디자인을 보는 즐거움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거장 중에 거장이다. 어떨 때는 희한한 책장으로, 어떨 때는 나비 같은 의자로, 어떨 때는 금속성 강한 인테리어로 한결 같으면서도 한결 같지 않은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노련한 디자이너의 지혜를 과시하고 있다. ‘피자’라는 이름을 가진 희한한 조명등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디자인을 작품이라고 하면 좀 어색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런 정도의 창의력과 개념을 탑재한 디자인이라면 작품이란 말이 그렇게 부당하지는 않다고 하겠다. 아무튼 어느 분야이든 거장일수록 어렵지 않게 작품을 한다.
그게 노련함이라고 할 수 있는 데, 론 아라드의 이 조명등도 쇼킹한 작품성과는 다르게 매우 단조로운 구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접으면 마치 모기향처럼 둥근 형태가 동심원처럼 뺑뺑 돌면서 가운데로 말려가는 형태이다. 파이프 몸체에 90도 간격으로 관절을 두어 그림처럼 여러 가지 포즈의 모양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쓰지 않을 때는 책상 위에 모기향처럼 접어 두면 그만이지만 쓸 때는 수많은 관절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해서 원하는 빛의 높이나 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이 조명 등은 그 어떤 조각품 보다도 더 뛰어난 조형작품 노릇을 한다. 가느다란 파이프 몸체와 둥글게 휘어진 모양새, 그리고 어떻게 움직이더라도 조형성이 풍부한 모양이 되는 구조는 정말 디자이너의 탁월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아무리 첨단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직접 자기 손으로 마무리하는 디자이너의 작업 방식이 이런 아이디어와 조형적 마감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결코 책상머리에서 만들어지지 못하는 현장의 손길이 가득한 아이디어이다. 론 아라드의 디자인들이 다 그렇지만 그는 컴퓨터나 첨단 재료들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아무리 번쩍거리는 미래적 이미지가 흘러넘친다 하더라도 과거의 공예적 손길로 마무리되면서 보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특히 그는 금속을 많이 쓰지만 결코 차갑게, 단단한 이미지로 마무리 되지 않는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피가 흐르는 혈관이 느껴진다. 아무리 서늘한 금속으로 되어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그렇지만 흔히 디자이너들이 그런 것처럼 론 아라드는 첨단 기술이나 새로운 재료들을 등한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기술적 성취에 대해서는 매우 개방적이고 관대하다시피 하다. 다만 다른 것은 기술이나 재료를 그 자체로 벌거벗겨 두지 않고 항상 전통이나 포근한 마음으로 옷을 입혀 놓는다. 그래서 그의 디자인은 말초적이지 않고, 심연의 깊이를 놓치지 않는다. 이 피자 조명에도 관절이나 몸통, 조명 등에 갖가지 첨단 기술이 베풀어져 있다. 하지만 그런 것 보다는 우아하게 흐르는 곡선의 아름다움이나 구조의 다이나믹한 인상, 조명 빛의 초현실적 분위기가 단촐한 구조와 차가운 피부를 두텁게 감싸고 있다.
이런 디자인을 60이 넘은 늙은(?) 디자이너가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뿐인데, 디자이너들도 이처럼 나이가 들수록 더 단순하고 깊이 있는 작품을 한다는 것을 잘 살펴봐야 하겠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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