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 400M 결승에서 박태환이 맞수 ‘쑨양’(중국)과 세계 기록 보유자인 ‘파울 비더만’(독일)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예선 7위로 결선에 턱걸이 한 박태환 선수가 결선에서 배정 받은 레인은 1번이었다. 1번 레인은 박태환
이 처음으로 배정 받아본 코스라 했다. 특히 1번 레인은 8번 레인과 함께 물의 저항이 가장 크다는 단점이 있다. 선수들이 앞으로 나갈 때 물살은 좌우로 퍼지게 되어 있다. 가운데에서 퍼진 물살은 1번과 8번 레인에 도달하면 큰 파장을 안긴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서 지진으로 생긴 파도가 해안에 도착했을 때 어마어마한 높이의 쓰나미로 변하는 것과 같은 이치란다. 세계는 그래서 박태환의 이번 우승에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있다.
박태환의 세계 선수권 제패가 값진 우승으로 평가 받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이번 대회는 전신 수영복 규제 후 열리는 첫 번째 세계 선수권 대회이기 때문이다. 전신 수영복은 수영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폴리우레탄 재질의 첨단 전신 수영복이 물의 저항을 줄임은 물론 부력까지 향상시키도록 발전 되면서 신기록을 양산하게 했다. 2년 전 박태환은 전신 수영복을 입지 않고 로마 대회에 나갔다가 전 종목 예선 탈락의 쓴 잔을 마셨다. 인간 본연의 신체 기능을 겨루는 스포츠의 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논란 속에서 세계 수영 연맹(FINA)이 2009년 7월28일 첨단 전신 수영복 착용을 금하였다. 수영복 소재도 제한하고 배꼽부터 무릎 위까지만 덮도록 규정을 바꾸었다. 당초 수영은 물속에서의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차츰 오락으로, 때론 군사 교육으로도, 그리고 승부를 겨루는 경기로 발전하였다. 1824년 파리의 공작 부인이 처음 수영복 풍의 복장으로 바다에 들어가면서 여성의 수영복은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수영복은 평상 시의 옷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896년 수영이 올림픽 경기 종목이 되면서 수영복은 기록을 위한 기능성이 요구되었다. 이후 수영복은 경기용과 레저용으로 구분하여 발전하게 된다.
수영복의 소재는 면과 울로 된 메리야스들이었다. 이것들은 물을 잘 흡수하여 무거워지고 신축성도 적어, 늘어지면서 옷과 인체 사이에 물이 들어가 저항을 크게 하였다. 흡수성이 없는 화학 섬유가 개발되면서 수영복에 변화가 왔다. 1970년대에 폴리우레탄 섬유의 등장은 신축성, 물의 저항, 그리고 가벼움에 이르기까지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급기야 부력에 보탬이 되는 수영복이 개발되고, 기록이 홍수를 이루게 되었다. 인간의 능력이냐, 수영복 때문이냐가 논란이 되고 결국 전신 수영복 착용이 금지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와중에 크게 상처를 입은 선수가 박태환이다. 그러나 박태환은 끝내 전신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는 여론에도 굴하지 않고 오늘의 영광을 일궈냈다. 그래서 더욱 값지다. 특히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에 이를 악물고 고된 훈련을 참아낸 그의 뚝심에 경의를 표한다.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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