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퍼모어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첫 작품을 대성공한 가수나 영화감독은 2집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세계를 담은 작품을 내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패션 디자이너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주며 성공적인 쇼를 마쳤더라도 계속해서 좋은 작품을 내지 못해 사라져간 신인 디자이너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점에서 크리스토퍼 케인은 성공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패션계에 안착해나가고 있다. 그의 데뷔쇼는 안나 윈투어의 주목을 받을 만큼 성공적이었다. 현란한 형광색의 밴드와 링으로 장식된 바디컨셔스 실루엣의 원피스로 가득했던 그의 첫 쇼는 보그 편집장만큼 안목이 높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에 본적 없이 신선했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1982년 스코트랜드 태생으로 영국 세인트 마틴에서 패션 교육을 받은 크리스토퍼 케인은 이제 막 우리 나라 나이로 30세가 되었다. 기초를 세운다는 이립(而立)의 나이가 되기 전에 그는 이미 랑콤 어워드, 영국 신인 디자이너상 등 패션계의 굵직한 상을 여러 개 받았고, 2006년 패션을 전공한 자신의 여동생과 함께 자신의 브랜드를 설립하면서 첫 쇼를 열어 주목을 받았으며, 베르사체의 후계자로 양성되고 있다.
두 번째 쇼에서 이미 마놀로 블라닉과 콜래보레이션하여 쇼를 선보였으며, 패션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팝 가수와의 협업도 있었다. 호주의 마돈나로 불리는 카일리 미노그의 뮤직 비디오 의상과, 영국 가수 베스 디토의 공연 의상을 제작한 것이다.
그의 약력을 살펴보면 많은 신인 디자이너들이 그러했듯 브랜드가 안정화되고 커갈 수 있었던 수순을 차근히 밟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적인 패션 학교 졸업, 굵직한 상 수상, 패션계의 거물들의 주목, 자신의 브랜드 설립, 여러 분야와의 협업 등의 과정이 그렇다.
세계적인 패션 기업의 지원을 받는 대형 어워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자금적으로나, 선배 디자이너의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 즉 크리스토퍼 케인이 랑콤 어워드의 심사위원으로 있던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눈에 띄어 실제적인 디자인 업무나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던 점이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 본인의 디자인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과연 도나텔라 베르사체나 랑콤은 어떤 가능성을 보고 크리스토퍼 케인을 후원하였을까. 우선 그의 옷들의 특징은 명확하다. 귀여움과 섹시함을 겸비한 원피스가 주를 이룬다. 모든 여성들이 선망하는 이미지인 것이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표현하고자 하고, 많은 대중들도 원하는 이미지를 크리스토퍼 케인은 어떻게 차별화하고 있을까?
2009 F/W 컬렉션에서 그는 검은색과 회색, 베이지색을 주로 사용하여 선을 강조한 원피스를 선보였다. 작은 원피스 안에 직선적인 면을 분할하여 속이 비치는 소재와 불투명한 소재를 적절히 배치하였다.
2010년 S/S 시즌에도 전 시즌과 비슷한 디자인 방법을 쓰긴 했으나 파스텔 계열의 색을 쓰고, 옷의 일부를 잘라내어 몸매를 더 드러내도록 하였다. 2010년 F/W에는 검은 원피스 안에 다양한 꽃이 만개한 자수를 넣었고 가죽과 망사소재를 섞어 투명과 불투명한 면의 대비를 이루었다.
고학수 현 디자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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