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네덜란드 디자인이 기승(?)을 부린지도 꽤 시간이 지나간 듯하다. 그래픽 디자인에서부터 제품 디자인, 패션 디자인에 이르기 까지 네덜란드 디자인의 파장은 그동안 광범위하게 우리 사회에 미치고 있었다.

네덜란드의 힘
유럽에서도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나라 네덜란드가 동아시아 한 쪽 끝에 있는 우리에게 깊게 각인된 것은 2002년 월드컵이 아닌가 싶다. 히딩크. 이 사람이 없었을 때 우리에게 네덜란드는 얼마나 미약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던가.
월드컵의 광풍으로 인해 우리에게 네덜란드는 순식간에 큰 비중으로 다가왔고, 유럽 여행의 필수 방문지로 등극했다. 그 여파였는지 디자인 분야에서도 네덜란드는 영국이나 미국에 맞먹을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각 학교마다 네덜란드 풍의 그래픽 디자인이 각종 졸업전이나 사회 각 분야의 그래픽 이미지에 반영되었다. 드룩(Droog)이라는 걸출한 디자인 그룹의 영향력은 세계적인 것이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의 산업 디자인계에 특히 영향을 많이 미쳐왔다. 패션에서도 네덜란드의 약진은 국제적으로 두드러진 것이었지만, 묘하게도 한국에서 네덜란드의 주가가 높아지는 사이클과 어울렸다.
아무튼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지 네덜란드의 디자인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음으로 양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세계적인 디자인 강국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네덜란드를 직접 방문해보면 좀 색다른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의외로 소박한
서울이 디자인 수도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많지만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그렇게 말한다면 크게 거부감을 가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을 가보면 디자인이라는 말이 무색해 질 정도로 소박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역. 하지만 유럽의 사정으로 보면 오히려 인천 국제공항이 걸맞을 듯한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해 보면 좀 놀라게 된다. 첨단에 첨단을 가도 모자랄 판에 한 나라의 수도 중앙역이 한 200여년 전으로 간 듯 고풍스럽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말이 고풍스럽지 현대의 손길이 전혀 가지 않은 모습이다. 한국 사람이 이 도시의 시장을 맡았다면 이렇게 방치(?)하지는 않았을 듯 싶다. 서울역을 휘감고 있는 초 미래적 분위기는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중앙역 앞도 좁은 도로에 트램만 왔다 갔다 하고, 서울의 어느 작은 동네 같은 분위기이다. 디자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것은 겨우 트램의 모양이나 정류장에서나 이다.
하지만 그 모습도 우리처럼 난잡하게 미래를 이미테이션 하거나 금속성 강한 싸구려의 냄새를 피우지는 않는다. 오히려 디자인을 한 것 같지도 않게 느껴지는 덤덤하고 시원한 느낌이다. 도시 전체를 보면 새것이 헌 것 속에서 그다지 존재감을 휘발하지 않는다.
암스테르담의 번화가의 모습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좁은 도로에 고풍스런 높은 빌딩들이 줄지어 서있는, 디즈니랜드 같은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운하는 도심 한복판을 독특하게 장식하고 있다. 청계천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사람들의 옷차림새도 수수하기 그지없다. 유난히 꽃모양을 좋아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취향은 세련되기 보다는 소박하면서도 멋이 있어 보인다.
편안하면서도 기분좋은 느낌을 주는 네덜란드 디자인이 근본적으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과연 디자인은 경제활동 안에서만 보아야 할 것인가. 그리고 디자인의 경쟁력은 진정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네덜란드 사회의 여러 정황들은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을 은연 중에 설명하고 있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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