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가 문을 열 무렵 아돌프 로스라는 독일 건축가는 ‘장식이 죄악’이라는 말을 하면서 디자인 역사에서 화려한 디자인이 움을 틀 여지를 싸그리 없애버렸다. 기능주의라는 말은 그러한 장식의 공백을 넉넉하게 막아 버리며, 미니멀한 스타일에 편중된 디자인의 흐름을 단단히 지켜주었다. 덕분에 20세기에 본격적으로 막을 연 디자인은 큰 고민 없이 단순하고 기능적인 방식에 충실한 체, 기업의 활동 안쪽에서 큰 위험 없이 서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장식을 하고픈 인간의 보편적 욕구를 큰 힘으로 눌러 놓는 가운데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결과였다.
때로 여기에 대한 반작용도 없지 않았다. 가끔은 디자인의 정도를 벗어났다는 비난에 뒤통수를 노출해야하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의 장식 욕구가 표출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죄악이라는 비난에 직면하며, 디자인의 주류에 편입되지 못했다. 자유로운 형태의 디자인이 장식이라는 혐의로부터 벗어나 면죄부를 받기 시작하는 것은 1980년대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흐름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시점부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식을 대놓고 하기는 쉽지 않았다. 대중들이 원해서 그랬다는 변호 없이는 디자이너의장식 의지를 디자인 속에 합법화하기는 어려웠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양식을 따르는 일.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스타일을 앞세우면서 자신의 개성이 아니라 사회화된 대중의 욕구라는 면죄부를 받아야만 색도, 형태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순전히 자신의 의지와 표현으로 장식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디자인계에서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프랑스같이 장식이 문화를 이끈 나라에서라면 이해가 되지만 네덜란드 같이 기능주의의 우산 아래에 있는 나라에서 나타난다는 것은 좀 의외라 하겠다. 마르셀 반데르스는 네덜란드 출신의 잘 나가고 있는 디자이너이다. 매듭으로 의자모양을 만들어 플라스틱 수지에 경화시킨 의자로 일약 세계적인 반열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네덜란드 특유의 소박하고 공예적인 느낌의 디자이너로 생각했는데, 지금와서는 무척 고급스럽고 화려한 장식으로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독특한 감각의 디자이너로 발돋움하고 있다. 많은 제품 디자인을 했지만 그의 장식성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인테리어 디자인이다.
개인 주택을 위해 그가 디자인한 인테리어를 보면 소박한 듯 하면서도 속속들이 장식으로 화려한 독특한 느낌을 즐기게 된다. 천정이나 벽지, 가구 등에 베풀어진 장식들은 흡사 청나라 말기의 과잉장식에 버금가는 듯 해 보이지만 거의 흑백으로 정리된 색채와 심플한 구조의 디자인들은 많은 장식들을 폭주하지 못하게 안정시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름답고 화려한 장식들은 조용한 가운데에 자기 목소리를 잔뜩 내지르고 있다. 과연 이 디자인을 100년 또는 200년 후에는 어떤 스타일이라고 부를까?
장식은 과잉으로 흐르기 쉽다. 현대 디자인에서 장식은 과잉의 상징. 절제되지 못한 실패한 형태로 낙인찍혔었다. 하지만 마르셀 반데르스는 그런 장식의 부정적인 입지를 한 번에 날려버리고 있다. 이렇게 장식이 과잉인 디자인도 100여년간 보기 힘들었지만, 이런 장식적인 디자인을 이처럼 정갈하고 순수하게 표현한 경우도 없다. 이런 디자인도 가능한데 왜 그동안 장식은 현대 디자인의 적대적 요소로 대접받았던 것일까? 마르셀 반데르스에 이르러 현대 디자인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한껏 달려가게 된 듯하다. 이런 깔끔한 디자인이라면 죄악은 커녕 축복이 되고도 남을 것 같다. 아돌프 로스의 선입견으로 인해 장식의 가능성은 어쩌면 억울하게 닫힌 상태로 100여년을 지난 게 아닐까. 이제라도 장식이 사법의 대상으로부터 벗어난 건 다행이라고 하겠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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