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수에 돌을 던졌다. 잔잔한 파장이 중심부로부터 일어나 물가에까지 다다른다. 그 순간을 멈추어 놓은 게 아니라면 이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처럼 조용하고 깨끗한 분위기가 어디 있을까. 조그마한 조약돌이 물에 빠지는 순간 맑은 소리를 내고 난 뒤의 아름다운 여울이 보는 사람을 호수 가장자리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든다.
물체의 뒤쪽까지 보이는 투명한 재질은 어디를 봐도 물이다. 그 위를 흘러가는 물결은 그런 믿음을 더욱 굳게 해준다. 밝게 비치는 빛을 하나도 남김없이 뒤편으로 보내버리는 투명한 형체는 손에 잡히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희한한 존재감을 느끼게 해준다. 물이 아니라면 이게 뭘까?
이 물체를 어떤 쓰임새를 가진 디자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미안하다. 맑은 물. 그것도 티 없이 맑디 맑은 물을 오염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굳이 무언가 실용적인 역할을 하지 않더라도 그걸로 충분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물에 간 것 같이, 물이 손에 잡힐 것 같은 느낌을 주었으니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마음이 무엇을 본 것 보다도 맑고 청량해졌다면 그것만으로도 도심지 생활이 가져다 주는 콘크리트 독성을 한결 누그러뜨린다.
그런데 이건 의자란다. 게다가 재료는 물하고는 거의 상극이랄 수 있는 플라스틱이다. 안경알을 만드는 플라스틱이라고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재료의 성질이나 가공방법을 살펴보면 매우 기계적이고 반 자연적이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설사 그것이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든지 하나의 반듯한 물이다. 도쿠진 요시오카라는, 요즘 일본에서 잘 나가는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것이다. 줄곧 자연을 모색해 왔던 이 디자이너의 행보를 생각한다면 그리 이상할 게 없는 디자인이긴 하다. 빨대 10만개 이상을 가지고 토네이도와 같은 질풍노도의 작품을 만들었던 사람이니 무엇을 못 만들겠냐마는, 그런 노력이 뒷받침 되어서 인공물로 자연물을 만드는 이런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 명의 작가로서 매우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사실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다가온다.
일본의 이세이 미야케 밑에서 오래도록 일하면서 그의 총애를 받아왔다고 하니, 클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그의 노력이나 자질이 우수하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지금은 독립하여 세계 유수의 기업들로부터 일을 의뢰받고 있다고 하니 이세이 미야케의 눈은 정확했던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그의 이런 디자인을 통해 의자가 단지 앉기 편한 바만을 취하지 않고, 무언가 정서적으로 기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아울러 우리는 한갖 의자 하나에서 심층 지하수 만큼이나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느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도쿠진 요시오카에게 큰 신세를 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한낱 플라스틱 덩어리가 물로 변하는 놀랍고도 엄청난 변신술을 보고 있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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