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이 땅에 사도(師道)가 무너져 스승도 제자도 없다고 개탄한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기 한 스승과 제자의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사도의 건재함을 전하고자 한다.
어느 여름, 정년을 앞둔 한 노교수가 밀라노 도무스아카데미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 교수는 소화 기능이 약해 해외 여행이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 세미나는 그 교수의 제자가 한국의 의상학 교수들을 위해 특별히 기획한 것이었다. 이 제자는 맨 주먹으로 이탈리아에 건너가 밀라노의 모든 패션 스쿨을 섭렵한 후 ‘페가수스’라는 패션 컨설팅 회사를 설립, 20여 년 간 한국의 패션 관계자들을 잘 인도해주고 있었다. 평소에 “밀라노에 오실 때 꼭 우리 교수님도 모시고 와 주세요”라고 여러 교수들에게 매번 부탁하였기 때문에 많은 망설임 끝에 “한 번은 초청에 응해야만 이 숙제가 풀리겠지”하는 마음으로 나선 길이었다.
오전 특강을 듣고 오후에 세계적 패션 거리인 ‘몬테나폴레오네’ 투어가 있었다. 아침에 먹은 이탈리아식 식사가 편치 않았던 그 교수는 무더위에 누군가 돌린 아이스크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몇 입 먹었다. 그리고 잠시 후 조지알마니 매장을 둘러보던 중 문제의 복통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그날 저녁부터 한국 식사가 배달되기 시작하였다. ‘복통 소동’이 밀라노에 와 있는 또 다른 제자인 영진에게 알려지면서 일대 ‘편한 식사 해 드리기 작전’이 벌어진 것이다. 그녀는 이탈리아인과 결혼해 밀라노에 살고 있었다. 이렇게 배달된 식사는 또 다른 제자가 들고 다녔다. 함께 갔던 30여명의 교수들은 부러워하며 매끼마다 이 진풍경을 구경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 않았다. 여행 중 안내를 맡은 제자가 이집트에서 산 특이하고 값비싼 진주 목걸이를 하고 왔다. 그것을 본 노교수 장난기가 발동해 전날 길거리에서 산 싸구려 가죽 팔찌를 보이며 “그거 좋은데 이 팔찌와 바꾸자”고 했다.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밀라노 공항에서다. 석별의 정을 나누던 노 교수에게 제자인 진희가 웃으며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예쁜 주머니였다. “교수님, 이거 가져가세요. 예쁘게 하시고 나중에 누군가에게 물려주시려면 제게 선물하세요”라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그 진주 목걸이였다. 깜짝 놀란 교수가 펄쩍 뛰며 사양했지만 제자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그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온 노 교수는 아주 중요한 날 그 목걸이를 딱 한번하고 깨끗이 닦아 고이 간직했다가 제자인 진희가 한국에 왔을 때 그 보물을 다시 선물(?)로 내 놓았다.
이번엔 제자가 사양했다. “이것을 하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이 목걸이는 이제 네 목에서 더 아름답게 빛날거야”라고 노 교수가 기어이 제자 손에 쥐어주었다. 또 “제 손으로 식사를 준비해 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라고 밥을 해 나르던 제자에게서도 메일이 왔다. 오늘날에도 이 땅엔 아름다운 정분의 스승과 제자가 있는 것이다.
송명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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