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의 역사는 산업 혁명 이전으로는 올라가지 않는다. 디자인이라는 행위는 산업 혁명이라는 기계적 생산방식이 확립된 이후로나 나타나는 것이며, 그 이전의 공예적 활동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독일이나 영국, 미국 등의 디자인은 모두 산업혁명 이후에 나타나서 산업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꽃을 피운다.
하지만 프랑스의 디자인을 살피다 보면, 산업 혁명 이후의 사태들만으로는 도저히 설명 이 불가능한 현상들이 많이 나타난다. 예컨대 19세기 말의 아르누보는 디자인의 역사에서도 비중이 가볍지 않는 현상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호화찬란한 양식적 경향들을 단지 산업 혁명 이후의 생산논리만으로는 그 기원이나 문화적 의미들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저 독일의 기능주의적인 디자인에 비해 좀 철이 없는(?) 과잉된 장식의 경향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찬란한 고딕이나 바로크, 로코코 양식을 주도했던 문화대국 프랑스가 19세기 말에 장식이나 과하게 하다가 아르누보를 만들었을까? 동시대에 인상파나 후기 인상파들의 건강하고 지적이었던 활동들을 생각한다면 장식만 추구했다고 하는 아르누보의 무뇌적(?) 경향은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 아르누보를 비롯해 프랑스 현대 디자인에 흐르는 장식적 경향의 의미는 고딕시대 때부터 절대 왕정기를 거쳐서 지금까지 내려오는 프랑스 조형예술의 전반적인 경향을 살펴보지 않으면 설명되지 않는다.

디자인은 기능성만을 추구한다는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이해하기 어렵지만 프랑스 사람들에게 장식은 단지 장식이 아니다. 장식이라는 말은 디자인에서 바라본 견해이고, 예술사적으로는 양식이라고 하는 것이 적합하다. 프랑스는 노틀담 성당으로 대표되는 고딕 양식으로부터, 베르사이유 궁으로 대표되는 바로크, 로코코 양식에 이르기 까지 서양의 고전주의 전통을 맨 앞에서 이끌었다. 이런 양식들은 건축물에 부가되는 장식으로 주로 표현되었고, 이 장식의 경향은 보편적 문화의 양식으로 전 유럽에 퍼져나갔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을 포함해서 유럽 사회에서 건물의 장식은 단지 장식이 아니라 문화의 압축태로 이해되었다.
서양 건축에서도 제대로 된 양식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고딕양식인데, 이 고딕양식은 12세기 프랑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대표적인 건물이 바로 파리 한가운데에 우뚝 서있는 노틀담 성당이다. 이 성당 앞에 서면 도저히 12세기에 지어졌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규모와 장식적 외모에 놀라게 된다. 전체의 복잡한 구조와 부분의 디테일한 디자인들이 장식의 과잉을 논하기 이전에 매우 유기적으로 조화되어있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이미지로 장식되었으면서도 전체와 부분의 복잡한 관계가 우아하게 조화되어있는 모습들은 프랑스의 조형적 경향이 이미 12세기 때부터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각이나 장식의 화려함도 뛰어나지만 아름다운 창문으로 들어오는 밝은 빛이 자아내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화려함은 프랑스의 조형적 경향이 얼마나 오래 전부터 문화적 유전자로 자리잡고 있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건물 하나를 지어도 이렇게 화려하고 우아하게 디자인해 내는 프랑스인들의 능력과 전통은 현대 프랑스 패션 디자인이나 프로덕트 디자인의 성격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된다.노틀담 성당의 뒷 편의 모습은 화려하면서도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마무리 하고 있다.

수많은 부분들이 화려하게 백가쟁명하고 있지만, 모두가 한치의 빈틈 없이 아름답고 인상적인 전체를 완성하고 있다. 장식이 단지 장식이 아니라 대단히 세심하게 조형적으로 조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을 보고 단지 장식 과잉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프랑스 디자인은 어쩌면 장식과잉이라는 음모 속에서 제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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