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핏 보기에 이게 무슨 디자인인가 싶다. 디자인이라면 멋있다든지, 아름답다든지 어떤 형태를 보여야 할 터인데, 이건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아보기도 어렵다. 로낭과 부홀렉이란 디자이너의 이름만 없었더라도 그냥 지나쳐 버렸을 것이다.
로낭과 에르완 부홀렉! 1990년대 말 프랑스 산업 디자인의 기대주로 각광받으며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필립스탁이 장기 집권해온 프랑스에서 그의 이름을 대신할 유력한 디자이너로 꼽혔던 형제들이다. 필립스탁이 다소 귀족적인 형태와 유머러스한 이미지로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었다면, 이들은 디자인과 공예, 재료와 생산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독특한 정신성이 깃든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눈뿐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사로잡았다.
그 대표적인 디자인이 바로 ‘Algues’이다. 말 그대로 해조류라는 뜻인데 , 일반적으로는 실내 공간을 구획하고 시선을 가르는 가림 막으로 많이 쓴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불규칙한 형태와 흐물흐물한 시각적 질감을 주는 이미지는 단단한 모양을 가진 완전한 디자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모자람이 있다. 게다가 어디에 어떻게 쓰는 건지 기능이 확실하지도 않다. 모양만이 아니라 내면에 담긴 무엇을 읽어내려는 자세가 좀 필요하다.

이 디자인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 불규칙하게 생긴 모양들이 사실은 나뭇가지처럼 생긴 작은 플라스틱들이 수없이 많이 끼워져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얼핏 보기에 무슨 식물의 넝쿨처럼 보이는데, 알고 보면 식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플라스틱이라는 공업적 재료로 되어있는 것이다. 정신에서 가장 먼 돌로 가장 정신적인 인간의 몸을 만들기 때문에 조각가와 같은 예술가는 특별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적 태도가 연상된다. 플라스틱으로 된 기본 형태는 봄날의 새싹처럼 여려 보이고 특별히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이 모여서 결합될 때에는 전혀 다른 양상을 펼친다. 우선 아이들 장난감 블록처럼 이리저리 끼우면 자유자재로 형태를 만들 수 있다. 파티션으로 쓴다면 필요한 만큼의 요소들을 결합하여 필요한 부분에 맞출 수가 있다. 마치 식물들이 주변을 타고 올라가면서 자라는 것 같다. 공간을 분할하고, 시선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티션으로서의 기능에는 문제가 없다. 오히려 장막이나 패널로 막는 것 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가볍게 같 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기능주의적 시각에서 이 디자인은 겨우 실내 공간을 나누는 장막이나 파티션 정도로만 파악 될 뿐이지만, 부홀렉 형제는 그런 기계적 기능주의를 넘어서서 대자연의 실현이라는 보다 차원 높은 이념을 이 작은 플라스틱으로 실현하고 있다. 이 정도면 프랑스의 자존심을 충분히 지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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