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패션 잡지를 넘기다 보면 마크 제이콥스의 자극적인 향수병 광고에 시선을 뺏기게 된다. 광고모델 뺨치는 외모의 마크 제이콥스가 전라의 몸에 야릇한 표정으로 왠 알루미늄 판대기 같은 향수병으로 중요부분만을 가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의 여자라면 그의 빛나는 식스팩을 거쳐 저도 모르게 향수병으로 시선이 꽂히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극적인 광경 때문에 향수병 자체가 그만 묻히고 마는데 사실 이 광고에서 가장 파격적인 것은 헐벗은 마크 제이콥스가 아니라 바로 이 향수병 일 것이다.
BANG 향수병 디자인을 마주하면 마치 BANG하고 총이 발사 된 순간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향수병 정중앙이 마치 총탄이라도 맞은 듯 움푹 들어가 있고 그 주위로 난삽한 주름들이 총탄의 충격을 시각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라서 포토샵으로 과장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실제 쇼핑몰에서 파는 디자인 역시 무엇에 눌린 듯 잔뜩 어그러져 있다.
기존의 반듯한 일직선 또는 여성의 S라인 몸 같이 아름다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향수병 디자인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마 이 BANG 향수병 디자인은 조금 충격적이고 기괴하게 다가 올 것이다. 혹여나 이런 불규칙한 주름들이 소비자들의 그립감을 위해서인가 싶기도 하지만, 역시나 그립감은 예상을 비껴가지 않고 딱히 좋지 않다.
그렇다면 제품 디자인에서도 꽤나 안목 있을 마크제이콥스에서는 자신들의 신상 향수병을 왜 굳이 이런 파격적인 형상으로 디자인 한 것일까?
패션계에서 눈을 돌려 현대 디자인 전반으로 향해본다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론 아라드의 의자를 보자. 이 의자는 ‘의자’라 명명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기존 의자로서의 행색을 마땅히 갖추고 있지 않다. 론 아라드의 의자는 마치 방금 누군가 푸욱 몸을 얹고 일어난 것처럼 물렁물렁하게 파여있다.
사실 기존의 직선적인 의자만 생각했던 우리로서는 이렇게 거칠고 정형화되지 않은 의자디자인이 매우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당혹스러운 감정은 패트릭 주앙의 조명등에서도 이어진다. 마치 개구진 꼬맹이가 몰캉한 실리콘을 손가락으로 꾸욱 누른 듯 한 이 조명등 디자인은 반듯하고 유려한 곡선의 기존 조명등의 이미지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다.
형태가 불규칙하고 어딘가 어그러진 듯한 형상들은 언뜻 보기에 기괴하고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존의 규칙적인 네모꼴을 탈피했다는 데서 오는 유쾌함과 해방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분명 직선의 딱딱하고 네모난 의자, 한치의 어그러짐 없이 동그란 조명보다는 론 아라드의 물렁한 의자 , 패트릭 주앙의 몰캉한 조명이 더 자유롭고 홀가분 해 보인다. 최근 세계 디자인계는 얼마 전까지 고수 했던 기하학적이고 정형적인 디자인에서 벗어나 이렇게 자연적이고 유기적인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현재 디자인계의 경향을 마크 제이콥스의 불규칙하고 자유로운 향수병 에서도 살펴 볼 수 있는 것이 깔끔하게 라인이 똑 떨어졌던 기존 마크 제이콥스의 향수병 디자인과는 완전히 다른 파격적 행보이다.
마크 제이콥스 패션 디자인은 언제나 진부한 것을 거부하고 매번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기로 유명하지만, 향수병 디자인에서조차 기존의 유려한 곡선, 기하학적인 직선에서 벗어나 불규칙으로 무장한 향수병 디자인을 선보인 것이 놀랍다. 비록 그립감도 떨어지고 파괴적으로 보이지만 BANG 향수병 디자인은 형태가 마치 살아 숨쉬는 듯 자유롭고 생동감 넘친다.
오늘도 패션 잡지를 넘기는 여성들이여, 이제 마크 제이콥스의 헐벗은 전라보다 마크 제이콥스의 은밀한 부분에 자리잡고 있는 ‘향수병 디자인’에 더 주목해 보시길.
황윤정 연구원(현디자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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