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쓰임새, 저렴한 생산,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할 수 있는 형태의 매력 등, 디자인이 입각해야 하는 것은 철저한 현실이다.
패션 디자인인 뿐 아니라 모든 디자인 분야들이 현실과 사투를 벌인다. 그래서 디자인은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출할 수 있는 예술분야와는 넓은 간격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콜래보래이션도 디자인이 순수미술과 넓은 간극을 가지고 있으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무튼 감성공학이나 디자이너의 개인기에 대한 요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디자이너가 순수 예술가들처럼 자기하고 싶은 데로 거리낌 없이 하기는 참 어렵다. 안 팔리면 어쩌나. 사람들이 보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이런 문제로 디자이너들은 항상 뒤가 캥긴다. 하지만 스타니슬라브 카츠 같은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라는 간판을 이마에 붙이고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예술의 세계로 성큼 성큼 나아가 버린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의 뒤를 따른다. 그만큼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juggs라고 이름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이건 우유주전자라기 보다는 우유가 주전자로 만들어진 것 같다. 안에 들어있는 것과 용기가 하나 되다니. 기능성과 심미성과 같은 단어들만을 금과옥조로 섬기던 기존의 디자인 분야에서는 좀 당혹스러운 결과이다. 기능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지만 그런 디자인 이상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단지 우유주전자일 뿐인데, 존재감은 그 어떤 첨단 디자인에 못지않다.
시장조사에, 첨단기술에, 마케팅에 목메던 디자이너나 기업들이 이런 디자인 앞에서 망연자실해지는 경우가 최근에는 부쩍 늘어난 것 같다.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전투를 하더라도 적의 허를 찌르고 상상하지 못했던 전술을 써야 이길 수 있는데, 그간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너무나 빤한 방법으로 디자인을 부려왔다. 하지만 이런 디자인은 전략이나 시장조사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들을 사로잡는 효과는 최고이다. 디자이너의 개인기가 이 정도라면 기업에도 얼마나 많은 것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아무튼 이 우유 주전자를 보면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천진난만하면서도 초현실적인 맛을 한껏 즐길 수 있다. 주전자의 곡선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시선이 자연히 네 개의 다리에 모인다. 어떻게 보면 우유 방울이 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풍만한 주전자의 볼륨감과 연결되어 소의 젖으로 보이는 것 같다. 그 끝은 소의 젓꼭지! 이렇게 보든 저렇게 보든 단순한 형태와는 달리 매우 중층적인 의미들을 담고 있는 디자인이다.
특히 풍만한 몸통을 받치고 있는 네 개의 다리는 부드러운 액체 적 느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체 몸체를 견고하게 버티고 있어서 안스러운 마음까지 들게 한다. 주전자가 마음을 움직이다니... 별 다른 설명 없이도, 별다른 슬로건 없이도 이 디자인에 담긴 편안하고 기발한 발상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스타니슬라브 카츠! 좀 생소한 이름의 디자이너이지만 예술의 세계에서도 가장 난해할 수도 있는, 그래서 디자인과는 간극이 더 커 보이는 초현실주의적 표현을 가장 현실적인 디자인 속에 거침없이 구사하고 있는 이 디자이너의 손길을 보면 디자인이 예술이 아니다 라는 생각과 여러 가지 걱정들을 주장을 그리 강하게 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의 디자인들이 가지는 특유의 초월적 성향과 우리의 마음을 친근하게 어루만져주는 친화력을 보면, 멀지 않아 우리는 그의 이름을 디자인의 중심부에서 발견하게 될 것 같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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