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는 고객 사랑을 먹고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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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8 오후 7:10:00

세계 4대 컬렉션만 해도 수 백 명의 패션 디자이너가 매 시즌마다 수 만 가지 새로운 옷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 많고 많은 컬렉션 중에서도 유독 찾아보게 만드는 디자이너가 있다. 내 수고를 들여 컬렉션을 찾아보게 하고,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드는 디자이너, 지난 1년간 다루었던 패션 디자이너들이 그들이다.


마르틴 마르지엘라, 알렉산더 맥퀸, 랄프 로렌, 존 갈리아노, 장 폴 고띠에, 마크 제이콥스, 비비안 웨스트우드, 칼 라거펠트, 돌체 앤 가바나, 레이 가와쿠보, 후세인 샬라얀, 미우치아 프라다, 그리고 질 샌더까지.


전 세계의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들 중에서도 엄선 된 이 13명의 디자이너들은 도대체 뭐가 다른 것일까? 뭐가 달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디자인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것일까?



옷을 보는 시각의 차이 
지난 1년여를 걸쳐 세세하게 컬렉션을 분석해 본 결과, 그들은 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이 되는 조형성이 뛰어나다. 단지 형태를 만드는 능력뿐만 아니라, 컬러와 소재를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에 대한 큰 그림을 만드는 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것이다.


그것은 타고난 감각의 문제보다는, 옷을 보는 시각에서 나타나는 차이일 것이다. 어떤 옷들은 지금 당장은 핫하지만 1년만 지나도 촌스러워 보이는데, 이들의 옷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 빛을 발한다. 그 결과는 디자이너가 전체 그림을 보는 조형적 능력이 뛰어난지, 작은 디테일에 집착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예쁜 여자를 그린다고 상상해 보자. 아무리 눈, 코, 입을 세밀하고 아름답게 묘사했다 하더라도, 그 바탕이 되는 얼굴형이나, 전체 몸의 비례가 맞지 않으면 어설프고 이상해 보이는 것이다.


당장은 이목구비가 예뻐 눈에 들어오지만, 전체적인 형태는 조잡하고 시간이 갈수록 그 매력이 떨어진다.


그것은 구조까지 건드리는 옷과, 표면 장식만 건드리는 옷의 차이이기도 하다. 디자이너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 13인의 디자이너들은 이 구조를 정확히 다룰 줄 안다.


패션 잡지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인 구조적, 건축적이라는 옷이란 표현은, 그 옷을 만든 디자이너의 시각이 장식적인 부분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닌, 좀 더 큰 바탕부터 볼 줄 안다는 말이다. 결국 구조를 먼저 세운 뒤, 세부적인 장식까지 조화롭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디자인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조형성이 뛰어나기만 하다면,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결국 그러한 멋진 디자인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패션쇼를 구성하는 능력도 무척 중요하다. 패션쇼의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의 문제다.



옷으로 표현되는 철학   
우선 뛰어난 조형성으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면 오래 가지 못한다. 그 밑에 깔려있는 주제, 정신성, 가치가 없으면, 사람들의 관심은 금방 사그라든다. 현대 예술의 문제와 같다. 비주얼 쇼크만 있을 뿐, 그게 다라는 거다.


신인 패션 디자이너들이 주의해야 할 부분도 그것이다. 단기적 관심이 아닌, 오래 가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할 수 있는 정신, 가치관, 주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13인의 디자이너들은 그런 점에서 디자인 밑에 깔린 철학이 다른 디자이너들에 비해 강하며 잘 드러난다. 그 주제가 쉬운가, 어려운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말이다. 드러내는 방식도  직접적이거나, 여백이 많아 해석의 여지를 많이 주느냐의 차이가 있다.


쉬운 쪽은 비비안 웨스트우드, 마크 제이콥스, 장 폴 고띠에,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 돌체 앤 가바나이다.


이들은 특히 기존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새롭게 재해석 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진부한 이미지를 새로운 조형으로 풀어내는데 탁월하다. 그래서 처음엔 미묘하게 뒤틀린 인상을 받지만, 이내 그들 디자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경우, 영국의 전통과 영국 사회의 문제가 녹아든 컬렉션으로 그녀만의 룩을 창조해냈다. 장 폴 고띠에는 프랑스의 고전 복식을 바탕으로 사회의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이 잘 드러난다. 전통 문화가 약한 미국 태생 마크 제이콥스는 20세기 이후에 고정화된 패션 이미지로 작업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패션을 예술처럼 접근하는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시각으로 아예 다른 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레이 가와쿠보, 마틴 마르지엘라, 후세인 샬라얀이 그렇다.


그들은 대중들 입에서 ‘저런 걸 누가 입어?’ 라는 말을 끄집어내는 디자인을 한다. 그들의 컬렉션은 현대 예술 만큼이나 어렵고 난해하다. 그들은 옷을 입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옷이 계속해서 사랑받는 것은, 그들의 철학이 사람들에게 공감되고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패션 디자이너란 사람들에게 시각적 충격을 주고, 거기에서 뭔가 감동이나 깨달음을 준다는 점에서 예술가와 같다.



시대성
아무리 뛰어난 조형과 뛰어난 정신도 시대와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70년대부터 미니멀리즘을 준비했던 질 샌더, 고급 맞춤복에서 고급 기성복으로의 시장변화를 간파한 칼 라거펠트, 역사가 짧은 미국인의 열등감을 잘 긁어 준 랄프 로렌, 자기 자신으로 파고들었지만 결국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대리자로서 디자인을 선보인 미우치아 프라다. 이들이 바로 그러한 시대성을 잘 읽고 표현한 디자이너이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하지만 달은 차고 기울고, 모든 것은 변한다. 마르지엘라와 질 샌더는 자신의 브랜드만 남기고 그들은 떠났다.


장 폴 고띠에는 에르메스를 그만뒀고, 갈리아노도 디올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알렉산더 맥퀸은 이 세상을 떠났다. 자의든, 타의든 힘든 시기를 보내는 디자이너들은 위의 세 가지 비밀을 잘 명심한다면 휘영청 밝은 보름달도 다시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앞으로는 새롭게 뜨고 있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조형 능력과 철학, 그리고 그들의 가능성을 알아볼 차례다. 패션계는 언제나 변하고 있다.



최경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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